밤하늘을 바라보는 할머니
산책길에 우연히 밤하늘을 바라보는 할머니를 보면서 생각에 빠져본다
며칠 전부터 해가 진 저녁이 되면 느린 걸음으로 산책할 수 있을 만큼 선선해진 듯하다.
내가 살고 있는 바로 뒤 약간 경사진 길로 연립주택이 연이어 있는 길을 오르다가 80 은 족히 넘게 보이는 할머니가 지팡이 대용으로 사용하는 작은 바퀴가 달린 노약자보행기에 앉아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다. 사실은 2~3일 전에도
그렇게 앉아 계신 것을 보았던 터라 왠지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나 자신도 저 나이가 되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어서 일지도 모른다.
문득 말동무라도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두운 밤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만 보는 저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제 아무런 희망이나 원망조차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밤하늘의 별과 구름을 바라보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행복했던 시절을 그리워하시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 먼저 떠난 할아버지를 그리는 것일까!
지난 소녀시절 때의 친했던 친구들과 행복하게 보냈던 꿈 많던 그때를 생각하고 계신 것일까!
자신의 육신조차도 스스로 움직이기 어려운 자신의 처지에 운명을 탓하기보다는 삶의 마지막 무대를 마무리하기 위해 순순히 긍정하면서 순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내가 저 할머니와 같은 나이가 되어 운신하기 힘든 상태에서 저렇게 저녁하늘을 바라보고 있다면,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이 나의 머리에 맴돌고 있을까?
아마도 나의 과거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빠르게 스쳐가겠지......
어린 시절에 동네 또래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놀던 추억, 국인학교 다닐 때 매주 월요일이면 운동장에서 아침조회를 할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는 지금도 생생하다.
여름에는 쨍쨍 내리쬐던 뜨거운 햇살을 아무런 저항 없이 마치 벌을 받는 것 같은 고통이 기억이 나고 겨울이면 꽁꽁 얼어붙은 운동장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차디찬 한기와 싸늘한 겨울기온에 발이 시려 마치 고문을 받는 것 같은 괴로움은 너무 또렷하다. 그때는 지금은 아예 찾아볼 수 없는 별로 두툼하지 않은 사계절용 전천후 운동화여서 새끼발가락에 걸린 동상은 아직도 흔적이 남아있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 단짝 친구들과 농구와 축구로 운동장에서 보낸 시간들....
고등학교 때는 방황과 갈등, 그리고 누구나 사춘기 그 시절에 겪는 인생에 대한 회의...
고교 졸업 후 직장을 가지면서 바로 시작된 사회생활은 자유함과 인생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는 변화의 시간이었지....
군 입대를 1년 정도 앞두고 이성에 대한 그리움과 관심은 평소 동료의 개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여성과의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고 입대하기 전까지 함께 있었었지....
군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함께 했었던 그녀로부터 이별을 암시하는 편지가 내가 받은 그녀의 마지막 소식이었지, 지금도 기억하는 글자."고드름 사랑"!
그리고 어쩌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 내가 근무하던 중대에 소속된 군종사병이 내게 끼친 기독교적 인간의 성실성에 대한 관심은 제대 후 나로 하여금 스스로 내가 사는 인근의 개척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이었지......
제대 후 나를 찾아온 그녀에게 나는 부디 행복하게 살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었지....
그 후 난 결혼을 했고 두 자녀를 가진 행복한 가장으로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었지....
아이들도 잘 자라 주었고, 월세에서 전세로 그리고 융자를 포함한 조그만 연립주택도 마련하게 되었었지....
고등학교 학력이었던 나는 방송통신 대학에서 학위를 당당히 받았고 야간행정대학원 과정도 수료하게 되었었지.
지금 생각하면 거기서 멈추고 나의 주위를 살폈어야 했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난 계속 도전을 했었지. 두 번의 미국 연수의 기회가 왔었고 , 첫 6개월은 직무 관련 및 어학연수를 조지아주 소도시 대학교 부설 연구소에서 마쳤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도시 부근에 카터대통령 부부가 출석하는 교회에 가서 부부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생생해...
그땐 나 혼자 연수를 했었고 3년 후 1997년에는 우리 가족 모두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었고 2년간 머물면서 시라큐스 대학에서 행정학석사 학위를 취득했었지....
이때까지가 내 인생의 오르막길 이었었지.
주식의 주자도 몰랐던 나는 인터넷을 이용한 데이트레이딩을 통해서 현금을 숫자처럼 사용하다가 그야말로 밑천이 바닥이 나버렸고 신용카드까지 박박 긁어 대는 바람에 빚더미에 앉아버렸었지...
벌써 나 홀로 생활한 지 20 년이 훌쩍 지나버렸구나!
허랑방탕한 세월 속에 버려진 내 인생을 바라보면서 간간히 그래도 이렇게 무의미한 삶으로 끝낼 수는 없다는 자의식이 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었지....
이제 내 나이 70 세! 노약자보행기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는 할머니를 보면서 이제야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조금씩 이해하면서 늦게나마 철이 들어가는 나 자신을 생각해 본다.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혼자만의 인생길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길이 우연을 가장한 연속된 사건들을 통해서 내가 원하는 길이
그분의 뜻에 따르는 길과 같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 주고 있다는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