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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준 Oct 22. 2024

사랑과 집착

집착은 사랑이 결코 아니다

조용히 비가 내리는 오늘은 왠지 사랑이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에서 줄곧 맴돌아 다닙니다.

사랑! 그 끝없는 미로! 태초에 아담과 하와에서 시작된 인류의 역사 이후로 사랑은 인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고 계속될 것이 분명하지요.

대체로 사춘기와 때를 같이하여 우리는 사랑에 눈을 뜨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사랑이라는 건데, 도대체 보이지도 않고 그래서 잡을 수도 없음에도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신묘막측한 무형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이 사랑의 힘은 때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 정도의 마력을 발휘하기도 하지요. 사랑에는 많은 유형의 사랑이 있지요. 잘 아는 바와 같이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 그리고  유희적 사랑이라고 하는 루드스, 또 친구 같은 사랑이라는 스토르게라는 용어가 네이버사전에 있군요.

사랑에 대한 오해로 인해 빚어지는 일들도 많지요. '데이트 폭력'이 그러합니다. 이것은 사랑이 지나쳐 소유욕과 이기심에 의한 집착이 초래하는 폭력적 행위입니다.

심지어 상대방은 물론 그 가족에게 까지도 영향을 미쳐 생명을 빼앗는 범죄에 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는 일을 포함합니다. 사랑은 봉사와 희생의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그(또는 그녀)의 실수와 허물과 잘못을 나무라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의 잘못을 알면서도 등을 두드려 주고 포옹해 주듯이 말입니다.

집착과 사랑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집착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속박하고 사랑의 대상을 소유물로 착각합니다. 집착은 자신을 불행으로 이끄는 참 자신의 의지가 아닌 악의 존재가 작용하는 무형의 또 다른 존재입니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Give  and  take'이 아니라 나누는 것입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라고 하지요.  물질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 측면인 형이상학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흰머리가 파 뿌리 될 때까지'라는 말이 있지요. 요즘 소위 신 세대(MZ 세대라고들 하더군요) 층에게는 생소한 느낌일 수도 있는데요, '결혼해서 늙어 하늘나라 갈 때까지'라는 말이지요.

초기의 부부사랑이 자식사랑이 되고 손주사랑으로 이어지다가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경륜이 사랑의 폭을 히게 되고 이제는 늙어 누추해지고 볼품없어진 서로이지만 그래서 더 이해해 주고 보살펴주는 아름다운 노년의 사랑으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았노라면서 남은 삶의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고 감사함 속에 살게 되지요.

하지만 이혼율이 녹녹지 않은 지금은 적용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점차로 사랑의 본질이 변색되고 퇴색되어 원래의 색깔의 빛이 바래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랑에는 적이 없다'라고 하지요. 다시 표현한다면 '사랑은 무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사랑 앞에는 적이 없으므로 모든 것을 이기는 것이지요. 사랑이라고 말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철저한 모욕이고 이기심과 소유욕에 기인한 집착이라는 어두움의 악의 존재가 그(또는 그녀)를 지배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지요.


진실한 사랑이 그리운 오늘. 조용히 비를 바라봅니다

사랑! 그 끝없는 미로!

(로마서 7장 19~20: 이는 내가 원하는 선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원치 않는 악, 그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그런데 내가 원하지 않는 그것을 내가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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