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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표 Jul 09. 2024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영원할 사랑의 기록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친구와 이 영화를 처음 보러 갔을 때가 아직도 생각난다. 영화의 주제나 진행 방식 같은 것은 당연히 친구에게도, 내게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난 그때 중학생이었고, 여자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차별과 배척을 오히려 비열한 것으로 여겼다. 무척 혼란스러웠던 그 겨울에 이 영화를 상영한다는 영화관을 수소문해 갔더랬다.


영화에 담아야 하는 것이 간편한 자극과 긴장감만은 아닐 것이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시놉시스 자체는 간단하다. 결혼을 앞둔 여성 ‘엘로이제’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방문한 화가 ‘마리안느’ 사이의 사랑과 성장 서사. 하지만 영화가 주는 깊은 울림을 압축하기에 한 문장, 혹은 몇 문장의 시놉시스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영화를 올곧이 이해하려면 2시간을 긴 호흡으로 바쳐 감상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영화 안에서 초상화는 총 네 개가 나온다. 우선 마리안느와 엘로이제를 이어주는 매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엘로이제가 가부장적 권력 행사의 주체에게 팔려가게 만드는 대상이 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결혼 초상화 두 개가 있다. 세 번째로 마리안느가 축제에서 치마 끝에 불이 붙었던 엘로이제의 모습을 회상하며 그린 초상화. 마지막으로 결혼한 엘로이제와 그녀의 아이가 함께 있는 초상화로 총 네 개.

그중 가장 집중해서 보아야 할 것은 처음 그려진 결혼 초상화 둘의 차이점이다.

자신을 훔쳐보는 마리안느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엘로이제.

마리안느가 처음 섬에 도착했을 때, 엘로이제는 결혼을 원하지 않았기에 초상화에 담기고 싶지 않아 했다. 그녀가 모델이 되지 않으려 할 것이 분명했기에 마리안느는 본 목적을 숨기고 자신을 ‘산책 친구’라고 소개한다. 관찰은 비밀스럽고, 은밀하며, 빠르게 이뤄진다.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초상화가 완성되지만, 어쩌면 당연하게도 결과물은 모델과 화가 그 누구의 마음에도 들지 않는다. 결국 화가는 그림을 지워 버리고 두 번째 기회를 얻는다.

어떤 것들은 정말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를테면 사랑이, 영화가, 예술이 그렇다. 또 영화 안에서 마리안느가 두 번째로 그린 엘로이제의 초상화도 그러하다.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선 서로를 응시하며 앉아 한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다른 사람은 포즈를 취한 채로 몇 시간이고 그대로 있어야 한다. 이때 마리안느는 엘로이제를 대상이 아닌 독립된 주체로 인식하게 된다.


반면에 엘로이제의 허락 없이 그린 첫 번째 초상화는 어떠했나. 그것은 다급하고 비밀스럽게 그려졌다. 대상의 동의도 없이 한 방향 관찰을 바탕으로 그린 초상화와, 엘로이제가 자의적으로 모델을 서서 양방향 소통을 바탕으로 완성된 초상화는 결과물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이렇듯 영화의 주된 내용은 엘로이제의 결혼 초상화를 그리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뤄진 응시가 가져오는 사랑의 감정이다.

하지만 영화 제목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다. 이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언급한 네 가지 그림 중 화가가 엘로이제의 모습을 회상하며 그린 그림이 있었다. 이 그림이 바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인데, 함께 축제에 갔을 때 모닥불 근처에 가까이 가서 치마 끝에 불이 붙은 엘로이제를 모델로 한 것이다.

이후 엘로이제와 침대에 누워 과거를 회상하며 마리안느는 그때 키스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즉, 그림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엘로이제의 모습을 담았기에 살아 있는 듯이 생생한 그림이 된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다들 뭔가 창조하는 느낌일까요?” 엘로이제가 마리안느에게 묻는다. 사랑은 예술과 무척 닮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관찰하고 그 사람의 모습을 내 안에서 재현하는 과정이 곧 사랑이다. 모든 연인은 서로에게 예술가이자 뮤즈이고, 이 관계에서 위계는 없다. 모두 동일 선상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사랑이자 예술이다. 영화에 담긴 자연스럽고 편안한 사랑의 모습, 자연의 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본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혼란스러운 시간과 계절이 지나갔으며 전염병 속에서 우리는 겨울을 이겨냈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갔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는 지 모르는 내 친구. 이제는 대학생이 되었을 그 친구도 가끔씩은 내 생각을 할까, 나는 때때로 궁금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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