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마라톤에 도전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건 시절 운동 겸 마라톤을 시작하셨었는데, 하프까진 그래도 잘 뛰시다가 풀코스에 막 입문했을 때쯤 무릎이 안 좋아지셔서 그만두셨었다. 그런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 와서 어쩌다 다시 시작하게 되신 건지. 나이도 있으신 만큼 걱정이 참 많이 되었다.
마라톤은 다들 알고 있겠지만 42.195km라는 긴 거리를 뛰어야 하는, 체력과 지구력은 물론 정신력까지 요구되는 정말 극한의 종목이다. 그 힘든 운동에 도전하시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운동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나로서는 '왜 굳이 그런 힘든 일에 도전을 하시는 건지'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마라톤을 좋아하시던 선생님께서 지역 마라톤 대회에서 학교 차원에서 단체 신청을 해서 '대회 속의 대회'로 교내 마라톤 대회를 여셨다.
한때 생기부에 예체능을 넣는 것도 엄청나게 강조되곤 했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너도 나도 마라톤 대회를 신청했었다. 나도 생기부에 '예체능에도 다재다능한 학생'이라는 내용 한 줄을 추가하고자 마라톤 대회에 나갔었다. 대회는 당연히 풀코스도 하프 코스도 아니고 미니 코스(10 km)였다.
(42.195 km = 풀 코스, 21 km = 하프 코스, 10 km = 미니 코스, 5 km = 가족 코스)
그때 그 선생님은앉아서 공부만 하는 고등학교 아이들은 이런 대회라도 없으면 운동은 전혀 안 할 것이 분명하니(...) 조금이라도 아이들의 건강을 지켜주고자 이 대회를 여셨다고 하셨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그냥 바로 10 km를 뛰면 분명 쓰러지거나 힘들어 쓰러질 것이라며 대회 전 일주일 동안 야자시간에 대회를 신청한 아이들을 이끌고 운동장을 10바퀴씩 뛰셨었다. 그렇게 다 같이 운동장을 뛰다 보니 대회 당일이 되었다.
뭐에 홀렸던 건지, 나도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는 소리 한번 안 하고 끝까지 뛰었었다. 그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딱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긴장이 풀리면서 말 그대로 토가 나오더라. 먹은 것도 없는데 속에서부터 위액이 올라오면서 다리도 쫙 풀려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1학년 여자 중에서 1등을 해서 상장도 받았었다. 기록도 운동을 1-2주 바짝 한 것 치고 괜찮았다. 10 km를 1시간 6분대에 끊었으니, 몸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얼마나 독하게 달렸던 건지.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내가 좀 대단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집에 돌아와서, 그리고 그다음 날까지 몸살에다 열까지 나서 주말 내내 누워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완주를 했다는 뿌듯함이나 성취감보다는 힘들어 죽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10 km 이상은 도전할 생각은 지금도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힘든 것을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도전인지는 알고 있다. 단순히 거리만으로는 4배 긴 코스이지만, 4배의 4배보다도 훨씬 더 힘든 일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가 마라톤을 다시 시작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응원의 말보다는 걱정의 말을 먼저 했던 것 같다. 왜 그 힘든 일을 해야 하냐고, 아빠 나이를 생각하라고. 물론 아빠는 잘 조절해서 하겠다며 그날부터 바로 운동장을 달리기 시작하셨다.
끝까지 말리고 싶었지만 몇 년 만에 보는 아빠의 진심 어린 미소에 말릴 수 없었다. 아니, 말려도 듣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평생 본인이 하고 싶은 것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하시던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나도 끝까지 응원하고 지지해 드리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리는 대신 마라톤용 운동화와, 시간이나 속도 조절을 위한 스마트 워치를 사드렸다. 아빠의 도전을 응원하는 게, 지금까지 응원을 받는 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라고 생각하면서.
아빠는 매일 밤 운동장을 달리셨다. 내가 사드린 신발과, 워치와 함께. 그렇게 다시 달리기 시작한 지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바로 풀코스에 도전하셨고, 멋지게 완주하셨다.그리고 오늘 밤에도, 아마 내일도, 모레도, 아빠는 운동장을 달리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