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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재경 Oct 27. 2024

술행복

하루 같은 사흘


그저께에는 목요일인데 버클리에 다녀왔다. 버클리라고는 대학교 이름인 줄 알았는데 샌프란에 와보니 알고 보니 도시 이름이었다. 프린스턴이 도시 이름인 것과 비슷하구나. 아무튼 오피스에 앉아 있었는데 같이 일하는 애널리스트 친구가 오늘 버클리에서 회사를 소개하는 이벤트가 있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해서, 마침 저녁 일곱 시였고 생각보다 일이 바쁘지 않아서 그냥 같이 가기로 했다.


버클리에 도착하니 공기가 달랐다. 사실 미국의 모든 대학들은 자신의 캠퍼스가 특별하다고, 고유의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모든 대학들은 사실 똑같다. 건축양식이 다르고 날씨가 다르고 사람들은 다를 수 있지만 사실 모든 대학들은 똑같다. 똑같이 잔디가 있고 잔디에 학생이 있고 츄리닝 바지를 입은 사람들이 있다. 똑같아서인지 나는 졸업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나의 대학 생각이 났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영문도 모른 채 건물에 들어가서 삼층으로 올라가니 정장을 입은 학생들이 웃으면서 나를 반겨주었다. 흰머리 때문인 것인지 내가 무슨 채용담당자 정도 되는 것으로 생각한 것 같은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일 시작한 지 두 달 됐고 아무 힘도 없고 너네들이랑 크게 다를 바 없다. 너희들이 나보다 일 잘할 수도 있다. 대학 시절 어떻게든 취업하려고 이런 네트워킹 세션 가서 사람들에게 말 걸었던 생각이 났는데 이렇게 반대편에 서보니 그땐 왜 그리 긴장했는지, 사실 상대편에 있는 사람은 아무 생각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고 나에게 말을 걸기 위해 줄을 서있는 학생들을 보며 나한테 말 걸기 위해 줄을 서다니, 역시 자본주의는 좋은 것이다.


사실 버클리에 간 것은 학생들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러 갔다. 같이 간 회사동료이자 친구가 자기가 대학 다니던 시절 있었던 사교클럽 집을 보여주겠다며 캠퍼스 밖을 나와 다운타운 쪽으로 걸어갔다. 다운타운으로 나오니 공기가 달랐다. 사실 미국의 모든 대학 타운들은 자신의 타운은 특별하다고, 고유의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모든 대학 타운들은 사실 똑같다. 똑같이 치폴레가 있었고 그 옆엔 버블티 가게가 있었고 담배인지 마약인지 전자담배인지 거리 곳곳에 있는 조그마한 입들에서 조그마한 연기들이 피어났다. 그리고 사교클럽이라고 하는데 사교클럽이라고 말하기에는 집이 너무 더러워서 소파에 앉는 것조차 신경 쓰여 사교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게스트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빠르게 사교클럽에서 나와 진짜 클럽으로 가기로 했다.


나는 클럽을 좋아하지 않는다. 거울을 보면 생긴 것부터 어딘가 클럽이랑 어울리지 않는데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와 어울리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많이는 아니고 가끔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우버를 타고 오클랜드로 향하는데 역시 신은 나의 이런 자잘한 생각들을 잘 들어주시는지 줄이 너무 길었다. 에이 젠장, 하고 처음 보는 동료의 대학 동창들에게 추임새를 넣고 있는데 한 명이 갑자기 한쉰풔촤에 가지 않겠냐고, 마치 영단어 처음 배우듯이 무언가 말하길래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그렇다, 그는 정말 한신포차에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오클랜드에는 한신포차라는 곳이 있었고 클럽에서 일차를 하고 이차로 가는 곳이었다. 나는 포차를 좋아한다.


한신포차에 앉아 있는데 화장실을 다녀오자 일 미터 정도는 되어 보이는 맥주 타워 같은 것이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아, 내일 일해야 되는데 - 하지만 나의 성격상 술을 잘 빼지 않는다. 그렇게 소맥을 한두 잔 말아먹다가 나의 하루는 끝났다. 나무를 잡고 토하던 친구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고 샤워하며 벽을 바라보던 나의 모습이 생각이 나고 침대에 누워서 릴스를 보다가 잠든 나의 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 날들이 행복할 때도 있다.


행복할 때도 있다. 행복할 때도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에는 다음날 오후쯤 되면 해장할 필요도 없이 멀쩡했었는데 이제는 술을 조금만 먹어도 그 여파가 이틀 뒤까지 이어진다. 속으로는 고통스러웠지만 겉으로 목요일 밤에 술을 먹었다는 것을 드러내면 안 되기에 일을 하면서 최대한 정상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했고 나는 연기를 잘해서인지 사람들은 내가 술을 먹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집에서 일할 것처럼 말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제발 금요일 밤인데 일을 시키지 말아 주세요, 기도 한번 하고 나의 애매한 신앙심의 한계를 느끼고 기도하다가 오늘 밤 친구가 하우스워밍 파티를 연다고 술 먹으라고 놀러 오라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났다. 평소 같으면 신나서 달려갔겠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전날에 술을 마신 나는 이틀 연속 술 먹는 것은 성경에서 죄에 해당하나? 가기가 싫었지만 그래도 나가는 게 좋겠지라고 생각하고 옷을 대충 차려입고 나갔다. 대충 차려입고 나간 것이 티가 났는지 파티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왜 이렇게 오피스에서 바로 온 것처럼 입고 나왔냐고, 그렇다, 나의 삶과 일이 이제는 분리되지 않고 있는 것이고 옷차림에서 그게 티가 나다니. 그래도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좋았다.


슬슬 집 생각이 나고 왜 나는 집에 있을 땐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하면서 정작 나오면 한 시간 만에 집에 가고 싶어 하는 걸까, 이런 나의 모순적임에 대해 생각하면서 모르는 사람이자 아마 살면서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게 내가 지금 이 사람에게 무슨 말을 뱉고 있는지, 소리도 시끄러워서 들리지도 않고 그렇다고 말을 뱉기 전에 뇌를 거친 것도 아니어서 정말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도 내가 하는 말이 들리지 않는데 그렇다면 이 사람도 내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아니 왜 이 사람은 미소를 짓고 있고 나도 미소를 짓고 있지, 이 사람이 문제인 건가 현대사회구조가 문제인 건가 이비인후과에 가야 하는 건가, 라고 생각할 때 즈음에 갑자기 무엇인가 플라스틱 같은 것이 타고 있는 냄새가 났고 나는 여기서 죽으면 정말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일이 너무 힘들 때는 우버를 타고 가면서 여기서 죽으면 억울하겠다, 그건 우울해서 든 생각이었고 파티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여기서만은 그냥 진심으로 정말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가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 일단 눈에서 보이는 것들 중에서는 타고 있는 것이 없었기에 나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지나고 졸지에 데려온 룸메이트를 불러서 집에 가고 싶지 않냐고, 하고 스웨터를 찾으러 부엌으로 갔다.


부엌으로 가니 이게 웬일인가, 불타고 있던 것은 나의 스웨터였고 불은 꺼진 상태였지만 원래 남색인 나의 스웨터는 한쪽이 까맣게 재가 되어 불타있었다. 파티에는 한 시간밖에 있지 않았고 술은 소주 한잔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스웨터를 잃었다는 생각에 억울하지도 않았고 그냥 이 상황이 웃기기만 했고 나의 대학 친구가 나에게 이런 일은 너에게 밖에 일어나지 않아, 하고 호탕하게 웃으면서 놀리는 상상을 했다. 그래 맞아, 이런 일은 나에게 밖에 일어나지 않아, 하고 곁에 없는 대학 친구 대신 내가 나를 위해 호탕하게 웃어주었고 옆에 있던 나를 오늘 처음 본 모르는 사람, 이제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그 사람은 불탄 스웨터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웃는 나를 그렇게 웃긴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원래는 연락할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연락을 안 할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 다른 사람에게 갔다. 나는 호탕하게 웃었지만 사실 그 스웨터가 무신사에서 구매한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구매한 것이었다면 호탕하게 울었을 것이다. 아마 무신사가 아니라 ALD에서 구매한 스웨터였으면 플라스틱 냄새가 나지는 않았겠지. 자본주의는 좋은 것이다. 불탄 스웨터를 집에 가져와야 하나, 하고 고민하다가 그냥 그곳에 두고 나왔고 이상하게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져 있던 나의 스웨터가 불쌍했고 그렇지만 우버에서 창밖으로 바라보며 이것이라도 추억이라는 생각에 나는 행복했다.


행복했다. 행복했다. 행복에 대한 생각을 하며 행복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영화 제목부터 행복한 것처럼 보이는 루카 구아디아노 감독의 <아이 엠 러브>를 삼 달러를 내고 구매해서 봤다. 새벽 한 시에 구매해서 보기 시작해서 아마 다 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볼 수 있었다. 영화는 행복했고 나의 심장이 꺄르륵 웃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음악 때문인지 영상미 때문인지, 사실 영화 자체는 불륜에 대한 이야기인데 불륜이란 단어 생각을 안 하고 보면 행복하다. 그렇게 행복이란 단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영화에서 틸다 스윈튼이 딸에게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라고 말했고 딸은 틸다 스윈튼에게 행복? 엄마, 행복이란 단어는 입 밖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단어예요, 말하는 순간 슬퍼져요, 라고 말했고 영상은 뿌옇게 변하면서 갑자기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눈물을 흘렸다고 말하는 시적인 표현이 아니고 루카 구아디아노 감독이 실제로 영상을 뿌옇게 만들었다. 행복하다. 뿌옇다. 행복은 그렇게 뿌연 것이다. 잡을 수 없는 것이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뿌옇다. 버클리에서 술을 먹다가 집에 돌아온 기억은 굉장히 뿌옇다. 행복을 이야기하던 틸다 스윈튼과 딸의 표정은 뿌옇고 아들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틸다 스윈튼이 그가 해준 음식을 맛보는 순간도 뿌옇다. 선명한 것은 그리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항상 안경을 쓰고 사는 나는 대체적으로 세상의 많은 것들이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 선명하게 느껴지고 선명하게 보이는 모든 것들은 상상할 수 있는 시공간을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인지 그리 행복하지는 않은 것만 같다. 그렇다고 안경을 벗고 살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현실은 현실이다. 현실을 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내가 살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안경을 대충 벗고 옆에다 두고 자는 밤에는 꿈을 꾸고 안경을 껴도 뇌가 뿌옇게 변하는, 그게 술 때문일 수도 있고 사랑 때문일 수도 있고 그냥 파티에서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래 그런 밤들은 행복하다. 그리고 안경을 끼고 살아도 가끔씩 생각나는, 당시에는 선명해서 행복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이제는 뿌옇게 변해버리기만 한 기억들은 행복하기만 하다. 이렇게 글을 쓰는 현실도 선명하지만, 밖에 나가서 아무도 만나지 않은 오늘도 너무나도 선명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뿌옇게 변할 것이고 뿌연 것들은 죄다 행복할 것이다.


버클리 대학 정문을 나와 친구의 사교클럽으로 향하던 밤, 거리 곳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들은 담배인지 마약인지 전자담배인지, 출처를 모르겠는 연기들은 모락모락 피어났고 하늘로 사라지고 나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피우는 담배연기, 모락모락 피어나거라, 연기처럼 변해버려라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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