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 좋아한다는 말은 참 이쁘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이쁘다. 사랑해, 라고 하면 으윽, 어딘가 낯간지럽고 무거운 느낌. 낮 열두 시인데 그렇게 무거울 필요가 있나. 사랑한다고 하면 책임이 생기고 쾌락이 사라진다. 최근에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한 적 있던가. 그에 반해 좋아해, 라고 하면 배시시, 어딘가 낯간지럽고 가벼운 느낌.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나 너 좋아해. 좋아한다고 하면 책임은 없고 쾌락이 생긴다. 낮 열두 시에 공원에서 너를 만났고 내 머리에 든 생각은 그러했다. 최근에 누군가에게 좋아한다고 한 적 있던가. 저기 벤치에 앉아 손을 흔드는 너에게 다가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고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면 둘은 명확하게 구분될 수 있을까. 벤 다이어그램같이 겹치는 부분들이 있을까, 아니면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명확하게 다른 것일까. 연인을 처음 만났을 때 좋아하는 감정에서 사랑하는 감정으로 진화하는 것은 과연 관계가 깊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관계가 아파지는 것일까. 설렘이 지속되지 않는 것은 관계가 깊어진다는 뜻일까, 아니면 인간의 한계일 뿐일까. 인간은 사실 사랑을 할 수 없기에 매번 사랑에 대해 노래하는 것일 수도 있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골든 레트리버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너와 함께 있으니 여기 공원에 앉아 닭가슴살과 밥만 먹어도 행복한데. 저기 골든 레트리버도 주인과 함께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골든 레트리버는 사랑을 할 수 있다. 일년이 지나도 우리는 같은 곳에 앉아서 같게 행복할 수 있을까, 이년이 지나도 우리는 같은 곳에 앉아서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아니 일이 년이 문제가 아닌걸, 당장 다음 주만 되어도 너는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사람은 변화한다.
너는 나에게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 그건 나도 똑같아. 최근 영화관에서 <위 리브 인 타임>을 본 것이 생각이 났다.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을 만나 몇 주간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삼십 대인 그는 여주인공이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우리는 미래에 함께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한바탕 싸우고 한 주가 지난다.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에게 다시 찾아온다. 내가 너무 미래에 집착해서 현재에 있는 아름다움에 집중하지 못한 것 같아, 라고 말한다. 몇 년이 지나고 둘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 인생은 그렇게 변칙적인 것이고 사람은 변화한다. 이것을 너에게 말하자 그래 맞아, 현재가 중요한 거야.
사랑은 무겁다. 가벼움, 가벼움을 찾아서. 나는 너를 좋아해. 풀에 앉는다. 풀에 앉아서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을 보고 우리를 본다. 사실 나는 너를 본다. 너를 보려고 사람들을 본다. 사람들을 보면 네가 보인다. 눈 옆에, 옆쪽 어딘가에 네가 있다. 너는 이번주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며, 웃으면서 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 네가 하는 이야기는 다 재미있다. 원래도 눈을 잘 못 마주치는 나는 너의 눈이 너무 커서 더더욱 마주치지 못한다. 공놀이를 하는 강아지를 바라보며 너의 목소리를 듣는다. 너의 목소리도 좋아해. 음음—그래, 음음 같은 너의 목소리가 좋아. 사실 네가 무슨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네가 중국어를 하든 독일어를 하든 러시아어를 하든, 나는 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어.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것이다. 나는 너의 멜로디를 들어. 내가 요새 제일 좋아하는 노래야.
커피를 마시자. 나는 커피를 좋아해. 너는 에스프레소를 좋아해. 유럽이 너를 바꾸었다고 했다. 나도 유럽을 좋아해. 네가 좋아하는 유럽은 내가 좋아하는 유럽과 다르대. 너는 리스본을 좋아해. 나는 파리를 좋아해. 너는 왜 그렇게 평범해, ㅋㅋ. 그래, 나 사실 엄청 평범해, ㅎㅎ. 평범하고 싶지 않아도 평범한 걸 어떡해, ㅠㅠ. 커피를 마신다. 그렇게 걷는다. 이제 뭐 하지—음음, 음음, 고양이, 음음—아, 그래, 우리 집에 사는 고양이를 보고 싶다고 했다. 고양이 좋아해? 고양이 좋아해. 우리집 고양이 귀엽다. 고양이 보러 우리집 올래? 고양이 보러 우리집 올래. 고양이를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사랑이 가벼울 수 있을까? 너는 너무 가벼워. 나는 너무 가벼워. 참을 수 없는 사랑의 가벼움. 택시에 앉아서 너를 본다. 너의 눈은 맑고 탁하다. 그 중간의 어디쯤. 택시아저씨 때문인지 너는 속삭인다. 음음 말고 슴슴—그래, 나는 너의 가사도 들어. 내가 요새 제일 좋아하는 글이야.
우리는 나란히 엎드려 창문을 바라본다. 창문 밖에는 고요한 도시가 있다. 고요한 도시 속에 유난히 잘 보이는 사거리 하나. 그곳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문득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생각, 지금 이 도시에는 우리 둘 밖에 없을 수도 있어. 우리는 어디로든지 가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그렇지만 일어나기 귀찮은 우리는 가만히 누워서 음악을 틀었다. 나는 이런 음악을 좋아해, 도란도란도란. 이 밴드는 어쩌구저쩌구, 내가 어렸을 때 어쩌구저쩌구. 너는 이런 음악을 좋아해, 배시시배시시. 너는 이렇고저렇고, 나는 이렇고저렇고. 어둠 속에 멜로디가 흘러들어오고 너는 웃는 것이 이쁘다. 네가 웃는 것은 좋아한다는 말만큼 이쁘다. 가끔씩 정말 호탕하게 웃을 때가 있는데 나는 네가 호탕하게 웃을 때 너무 좋아. 너를 웃기려고 노력한다. 나는 사실 그렇게 재밌지는 않은데. 이렇게까지 호탕하게 웃어주는 것을 보니 너도 나를 좋아할까. 좋아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 너는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어? 아니—나는 좋아할 준비만 되어 있는걸. 아무렴 어때. 좋아하는걸.
이 도시는 우리의 것이지만 시간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너는 떠나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남겨진 사람이 되었다. 좋아만 해서인지 너는 떠나갔다. 사랑했다면 떠나가지 않았을 수도. 심장이 아픈걸. 그래, 한 시간이 지나고 나는 갑자기 아팠다. 아, 너무 아프다. 더 이상 아프고 싶지는 않았는데. 또 아프구나. 좋아해 좋아해. 아냐 사랑해 사랑해. 아냐 가벼워야 해, 좋아해 좋아해. 가슴이 터진다. 걸을 수 없다. 가슴이 아프다. 고양이를 껴안을 거야.
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