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큰 책임을 맡길 사람에게 반드시 먼저 고난을 준다.
— 맹자ㆍ고자
잘못했더라도 선행으로 덮는다면 구름을 벗어난 달처럼 밝아진다.
— 법구경
실수해도 괜찮다! 그 자리에서부터 다시 하면 된다! 접수! 마음에 꾹꾹 눌러 담고 책상 앞에 붙여 놓기 완료!
자, 이로써 실수가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이란 걸 알았습니다. 지금부터는 ‘다시 하기’가 관건이네요. 내적 동기가 충만한 사람이라면,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라면,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다시 하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인가?’라는 물음에서 단박에 “Yes!”라고 대답한다면 문제 없겠지만, “Am...”이라고 뜸 들인다면? 바로 이 순간 갈림길에 생깁니다.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갈림길에서 또 다른 갈래가 생겨요. 나뭇잎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무성한 겨울나무처럼 말이지요. 선택을 내리는 자리에 서 있을 때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고민 중 온갖 걱정에 휩싸이거나, 자기가 만들어 낸 상상 속에서 두려움에 잡아 먹힌다면 동작 정지 상태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게 되거든요.
아래로, 저 아래로, 점점 더 아래로 떨어지다 보면 길을 잃게 됩니다.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처지에 놓이게 되죠. 길 잃은 아이를 찾아내는 것처럼, 동화 속에서 왕자님이 온갖 역경을 겪는 여주인공에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미래를 약속하는 것처럼 구원자가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다시는 자력으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자포자기 상태로 잔뜩 움츠리고 있겠지요. 얼마나 파고 들어갔을까 가늠조차 어려운 깊은 동굴 속에서 난데없이 한 줄기 빛이 내게 열리는 겁니다. 마치 내게 또 다른 기회는 없으리라 믿었던 절망의 세상에 다른 문이 열리는 거에요. 추할 대로 추해진 나는 그 빛으로써 다시 회생하는 거지요. 소실에서 부활로 이동하는 순간을 상상하곤 합니다.
말 그대로 상상입니다. 리얼리티를 배제한 나의 마음속에서 그려낸 환영이죠. 상상 속의 대운이 내게 올까요? 반대로 최악으로 설정한 상황이 진짜 내 앞에 닥칠까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황당한 얘기지만 저는 로또가 붐이었을 때 사본 적이 없어요. 느닷없이 당첨될까 봐. 로또 붐이 사그라들 때 즈음 아시는 분이 어느 큰 모임에서 본인이 왕창 사들인 로또를 모두에게 한 장씩 나눠 주셨어요. 그 모임 때마다 그렇게 전 5번 정도 로또 경험을 했고, 내 손안의 작은 종이에 적힌 번호를 하나씩 입력하며 긴장했습니다. 진짜 당첨될까 봐. 그 큰돈을 내가 어떻게 감당할지 기분 좋지만 두려운 상상을 하며. 결론은 단 한 번도 된 적 없어요. 딱 한 번 오천원에 당첨되었는데 그마저도 수령 시기가 지나 휴지조각이 되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될 거라는 허무맹랑한 상상은 산산조각이 난 거죠.
천하의 큰일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 도덕경
현실이 그래요. 운이 따르면 좋겠지만 요행만을 바랄 수는 없습니다. 세상 최고로 멋져 보이는 사람의 성공스토리, 많이 접했죠? 수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난 인물은 강한 의지와 절개가 있더라고요. ‘세상아, 부딪혀라. 날 때려눕힐 거라면 어디 한번 해보렴.’ 이런 식의 감히 흉내내기 어려운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자신감의 근원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천하의 거대한 것도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는 노자의 말처럼, 아무리 강인한 생명체도 작고 여려 위태로운 시절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 겠어요.
알 수 없는 세계에 나의 시간과 열정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고 세뇌해 봅니다. 정성 들여 만든 환상의 세계를 산산조각 내는 수 밖에요.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고, 가짜는 더 거대한 가짜의 세계를 만들어갈 테니까, 그럴수록 나는 더 허황되고 공허하고 고립되어 외로울 테니까. 가짜를 스스로 깨부수고 힘내어 두 다리로 일어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확신한 것들이 있어요. 쉽게 얻어진 건 그 가치의 무게도 가볍다는 것, 미세하더라도 내가 공들여 일궈 낸 일이 귀하다는 것이에요. 굳세게 애써서 내가 해내야만 하는 일입니다.
일이 크든 작든 규모에 상관없이 내 안에서 솟구치는 성취감은 나를 일으키는 동력이 될 거에요. 마음은 해냄의 보람을 저장하고 몸은 동력을 기억합니다. 언젠가 또 넘어졌을 때 나를 일으키는 밑천이 되어 줍니다. 주저앉아 있을 때 누군가의 위로는 따뜻합니다. 그 온기에서 벗어나기 싫을 정도이죠. 그래서 생각해요,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위로보다 용기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