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끝이라고 말하지 않기 위해, 버텨온 시간

아직은 끝내지 못한 이야기

by 고bee

신장이식은 늘 희망의 언어로 시작한다.

수술 전 설명을 할 때도,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도 우리는 늘 '잘 될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말이 거짓이 아니기를 누구보다 바라는 쪽은 의료진이다.


2025년 10월, 8년간 복막투석을 해온 40대 여성 환자가 60대 뇌사자의 신장을 이식받게 되었다.

오랜 투석 생활 끝에 맞이한 기회였고, 그녀는 이미 기다림에 단련된 사람처럼 보였다.

수술은 기술적으로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출혈량도, 혈관 상태도, 수술 소견도 기증자 분의 나이에 비해 '문제없음'에 가까웠다.

우리는 이제 신장이 제 역할을 시작하기만을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식 후 신장은 조용했다.

소변이 나오지 않았고, 크레아티닌 수치는 떨어지지 않았으며, 포타슘 수치는 날로 높아지기만 했다.

처음 며칠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지연성 기능 회복일 거라 생각했다.

“조금만 더 지켜보죠.”

그 말은 의료진이 자주 쓰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늘 불확실함을 견디는 연습이 숨어 있다.


며칠이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지나도 변화가 없을 때 우리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환자는 매일 1cc의 소변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며 모았으며, 검사 결과들을 확인했다.

하루 100cc 남짓한 소변량은 희망이라기보다는 붙잡고 싶은 최소한의 증거였다.


보통 2주면 퇴원하는 병동에서 그녀는 그 예쁜 단풍도 보지 못한 채 두 달 가까이 머물렀다.

면역억제제는 유지되어야 했고, 아니, 더욱 많은 용량을 투여하여 거부반응을 이겨내보고자 했고, 그 대가로 그녀의 몸은 감염에 취약해졌다.


CRE, CPE, VRE, CMV, Candida......


차트에 적힌 균 이름은 점점 늘어갔고, 우리는 치료 계획보다 대응 계획을 더 많이 세워야 했다.

'균이 하나 더 생겼네'가 아니라, 면역상태의 경고 신호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균이 생겼다는 건 단순한 감염의 문제가 아니라, '이 몸이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얼마나 세게 버텨왔는지'를 보여주는 증거 같았다.

그렇다, 그녀는 두 달이 넘는 시간을 고열과 쓰러짐을 번복하며 버텨주고 있었다.


그녀는 하루에도 여러 번 같은 질문을 했다.

“제 신장, 정말 괜찮은 거죠?”

그 질문은 단순한 확인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누군가 다른 말을 해주지 않을까, 혹시라도 아직 우리가 모르는 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을까, 그녀는 그 희박한 틈이라도 붙잡고 싶어 했다.


낮에도 우리만 보면 그렁그렁 하던 그 눈이, 밤이 되면 울음으로 가득 매워졌다.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했고, 잠들지 못한 밤은 불안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의료진으로서 차분함을 유지해야 했지만, 병실 문을 나서며 숨을 고르는 순간들이 늘어갔다.

이식이 실패한 것처럼 보일 때, 환자의 감정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하루 또 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 한구석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검사는 거의 다 해보았다.

도플러, 조직 검사, 영상 검사, 초음파 검사, 감염 평가 등등......

그러나 명확한 원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순환기내과에서 심낭염이 신부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아주 낮은 가능성이 언급되었고, 그 설명을 환자에게 전달하며 답이 없는 상황에 나 스스로도 그 말에 기대고 있었다.


결국 신장 기능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녀는 다시 복막투석을 지속하며 퇴원하게 되었다.

면역억제제는 최소한으로 유지되었다.

우리는 '기능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합병증을 관리하며, "생존"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의료진에게 이것은 현실적인 판단이었지만, 환자에게는 또 한 번의 상실이었을 것이다.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든 계절을, 오롯이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그녀

퇴원 이후에도 그녀는 자주 병원을 찾았다.

2주에 한 번꼴로 고열과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 왔고, 외래 진료를 보면 입원하곤 했다.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응급실 환자목록에서 익숙하게 보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대체 얼마나 더 견뎌야 할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도, 그녀도 이식한 신장의 행보에 대한 결정이 된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외래에서 다시 한번 차트를 천천히 보게 되었고 믿기 어려운 숫자들이 적혀 있었다.


하루 소변량 700cc.

크레아티닌 수치 2점대 후반.

(정상인의 소변 하루 1-2L, 크레아니틴 수치 0.6-1.3mg/dL)


수치 하나하나를 여러 번 확인했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교수님은 다시 면역억제제 용량을 조심스럽게 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기대를 크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기로 했다.

이 결정은 기적을 믿어서라기보다 그녀가 보여준 시간과 태도를 의료진으로서 존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장이식의 성공과 실패는 수치로 정리되지만, 그 과정을 견디는 사람들의 삶은 그보다 훨씬 길고 복잡하다.

의료진으로서 우리는 끝이라고 말해야 할 순간과, 조금 더 지켜보자고 말해야 할 순간 사이에서 매일 줄타기를 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다.

신장이식 수술은 수술 시간만 놓고 보면 이식 수술 중에서도 아주 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장이 제 기능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짧거나 단순하지 않다.

면역억제제를 조절하고, 수액을 쏟아붓고, 수치 하나하나에 예민해지며 기다리는 시간은 의료진의 노력만으로도, 환자의 의지만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신장이식에는 언제나 성공만 있는 것은 아니다.우리는 모든 수술을 같은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모든 결과를 같은 방식으로 맞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은 항상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설령 결과가 우리가 바란 방향이 아니더라도 환자의 곁에서 끝까지 지켜보고, 설명하고, 지지한다.


나는 지금도 그녀의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히 응원하며.

이식 신장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그녀는 이미 포기하지 않는 방법을 몸으로 증명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료진으로서 나는 이 이야기가 “실패한 이식”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기적을 약속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끝까지 지켜본 한 사람의 시간으로, 아직 진행 중인 이야기로 남기를.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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