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서른 즈음의 정치업을 시작합니다'라는 글에서 '정치업에 종사하게 된 것은 우연이라 하기에는 꽤나 노력했고, 당연으로 보기에는 많이 모자랐다'라고 밝혔다.
마냥 우연으로만 볼 수 없는 게 '정치'라는 영역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지역 언론사 사주셨다. 정치는 언론의 생계다. 지역 언론도 예외일 수 없다.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으로서의 언론의 역할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지방 선거 결과에 따라서 가계 수입이 바뀌었다. 광고의 양이 달라졌고, 구독자 수도 증감하곤 했다.
인간으로서 사익과 언론인으로서 공익 그 사이 어딘가에서 고뇌하고 좌절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게 각인된 정치의 첫 모습이었다. 일상이 정치였다. 아니 일상이 정치일 수밖에 없었다.
정치가 내 삶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을 남들보다 더 어린 시기에, 더 가까이에서, 더 노골적으로 겪었다. 그냥 평범한 일상이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던 배경이다.
그래서일까. 정치는 내게 성스러운 것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잡스러운 것 또한 아니었다. '평범'을 위대하게 여길 이유가 없었고, '일상'을 혐오하고 싶지도 않았다.
정치는 내게 그런 것이었다. 평범한 일상이자 간절한 생계일 뿐. 정치학을 전공한 것도 이 때문이다. 뭔가 굉장한 뜻과 각오는 없었다. 단지 익숙했다. 그게 다였다. 나름의 순리였다.
이런 정치가 내게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 것은 성인이 된 이후였다. 11년 전, 한 장의 대자보가 내 일상을 치고 들어왔다.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였다.
그때는 정치적 무관심이 마치 유행인 것처럼 대학가 분위기를 점령하고 있던 때였다. 시대적 관성이었다. 등록금, 학점, 스펙, 취업 등 당장 치이는 것들에 적극적으로 순응하거나 적극적으로 회피하던 시기였다.
내 능력과 노력의 모자람만을 당연시 여기던 때였다. 나의 모자람이 오롯이 나의 모자람 때문으로 여겨졌다. 더 노력하거나, 더 스스로를 탓하는 게 다였다. 그것조차 지치면 주어진 것들을 원망했다.
묻지 않았다. 왜 더 노력해야 하는지 물을 여유가 없었다. 모든 잘못이 내 탓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정확히는 맞설 방법을 알지 못했다. 방법을 모르니 용기 또한 갖지 못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대를 다녀온 뒤 당장 눈에 치이는 것들만 보였다. 정치에 관심을 갖는 게 유행에 역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행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일상이었던 정치가 일상 밖으로 밀려났다.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는 그걸 깼다. 일상이자 생계로서의 정치가 무기력의 시대에 균열을 일으켰다. 정치적 무관심은 유행이 될 수 없음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게 나를 깨웠다. 저 대자보처럼 나도 말하고 싶었다. 우리에 있어 정치가 어떤 의미이고, 무엇인지를 떠들고 싶었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관심이 다르다는 것을 외치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로 기고문을 남겼다.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무기력의 유행'을 끝내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운이 좋게도 채택이 됐다. 많은 사람이 읽었다. 반응도 좋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때가 일상으로서의 정치를 넘어선 순간이 아닌가 싶다. 정치업의 길에 들어선 시작점이었다. 이때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정치와 관련된 글을 썼고, 그것들을 쌓아 나갔다.
정치적 소신과 철학이라는 게 생기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치업자로서의 기술 역시 늘었다.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어떻게 관심을 갖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술적 고민들도 커져갔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정치업자로서 스스로 준비를 해왔던 것이다. 실제 본격적인 정치업에 들어섰을 때 이 모든 경험과 고민은 큰 힘이 됐다.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적응했고, 조금 더 크게 인정받았다.
오늘은 나를 정치업자로 들어서게 해 준 그 첫 글을 소개하려 한다. 운명과도 같던 정치가 숙명으로서의 정치업으로 바뀌던 그 순간을 여러분께 공유한다.
13년 12월 17일 오마이뉴스 기고문 '안녕하기 위한 그들의 정치'
고려대 주현우 학생이 코레일 파업 참가자 직위 해제,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등을 규탄하며 학내에 붙인 '안녕들 하십니까' 자보가 전국 대학가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각자의 자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나누는 공간인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는 '좋아요'를 클릭한 인원이 21만 명을 넘었다.
선거 때마다 저조한 투표율을 보이며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고 생각되던 20대들을 대자보 한 장이 세간의 이야깃거리로 만드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깃거리는 30년 전 대학생들이 외치던 숭고함과는 거리가 있다.
30년 전 대학생에게 정치적 민주화라는 절대적인 성전에 뛰어들었다면 지금의 대학생들은 내가 먹고 살기에도 벅차다. '우리들의 성전'은 죽은 지 오래고 '나만의 투쟁'으로도 벅찬 지금을 살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를 가로지르는 최우선의 화두는 정치적 민주화였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식하는 과정에서 대학생은 민주주의의 투사이자, 보급자였다. 이렇게 재단된 대학생의 모습에서 대중들은 진취성과 진보성을 인지해왔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가 공고화 과정에 들어서면서 대학생들이 중요시 여기던 민주주의라는 화두는 그 호소력을 잃었고 이후 대학생들의 정치적 역할과 색깔은 흐릿해지게 되었다. 절대적 숭고함이었던 민주주의가 최소한의 목표를 달성하자 대학생들은 정치적으로 갈 곳을 잃게 된 것이다.
특히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로 초래된 경제 위기는 대학생들에게 정치는 곧 민주주의라는 공식의 파괴를 가속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대학가의 절대 과제였던 제도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완성된 시점인 데다가 당장 나의 생계를 보장할 수 없는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체제에 부딪히면서, 정치는 민주주의라는 숭고한 공식은 더 이상 대학생들에게 설득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독재타도와 호헌철폐를 외쳐대며 내일을 위했던 거리의 문구는 등록금 인하, 비정규직 철폐와 같은 오늘을 걱정하는 문구로 변모했다. 이들의 외침은 이전처럼 숭고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와닿고 공감됐다.
본질적으로 정치는 부와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최대 다수의 이익을 공정하게 보장하는 체제로서 민주주의가 채택되었다. 지난 수십 년간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하고자 했던 목적이 여기에 있다. 이제 정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민주주의는 내가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보장된 권리이다.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닌 당장 내 옆의 현실이다.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기에 숭고하진 못하지만 절실한 것, 그것이 바로 정치이다.
정치는 더 이상 경외감을 갖거나 두려워할 엄숙한 목적이 아닌 평범한 삶의 일부이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거리에 나서는 것도 정치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또한 정치이다.
더 이상 대학생들은 대중들이 경외했던 숭고한 정치적 투사이자 고귀한 민주주의의 보급자일 필요가 없다. 나를 위한 작은 관심이 우리를 위한 큰 목소리로 바뀔 수 있다. 아직 우리는 대자보 한 장으로 작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를 향한 언론의 반짝 관심 때문이 아닌, 진심으로 '안녕'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정치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대학생들이 대자보 한 장이 일으킨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