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기 어려운 슬픔을 표현할 때 ‘가슴이 찢어진다’라는 표현을 쓴다. 신체가 찢어질 때 느껴지는 심한 통증에 비견할 정도의 슬픔이라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신체가 찢어진 경험을 한 사람은 별로 없을 텐데, 우리 몸에서는 간혹 혈관이 찢어지는 일(혈관박리증)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가장 유명하면서 위험한 혈관박리는 대동맥박리이다. 사망률이 워낙 높다 보니 뉴스나 의학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하고 최근 흉부외과 의사 부족 문제가 거론될 때도 연관되어 자주 거론되는 질환이다.
혈관이 찢어지는 일은 대동맥뿐만 아니라 목을 지나가는 혈관들인 경동맥과 척추동맥 등에서도 발생한다. 가장 흔한 원인은 외상인데 사실 특별한 이유 없이 저절로 찢어지는 경우도 꽤 있다. 내가 전공의 때 처음 경험한 혈관박리 환자는 친구들과 축구하던 중에 콜라를 마시려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척추동맥이 찢어지면서 뇌경색이 발생했었던 환자였다. 당시 나는 1년차 전공의였는데 처음 보는 환자였었기 때문에 당황했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경동맥과 척추동맥이 찢어지는 일은 골프를 치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골프 스윙을 할 때 몸을 비틀게 되는데 그때 목을 지나가는 혈관도 함께 비틀어지면서 찢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뇌경색이 발생하는 경우 ‘Golfer’s stroke’이라고 하기도 한다. 혈관벽에는 통증을 느낄 수 있는 통증 수용기들이 있기 때문에 혈관벽이 찢어지면 심한 통증을 느낄 수 있다. 대동맥이 찢어지면 흉통, 경동맥이 찢어지면 목통증, 두개골 안의 뇌혈관이 찢어지면 두통이 발생한다.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환자가 있다. 2011년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근무하는 지역은 눈이 잘 오지 않는 곳인데 그 해 겨울 드물게 폭설이 내렸다. 30대 후반의 젊은 남성이 뇌혈관 중 기저동맥(basilar artery)이라는 혈관이 찢어지면서 뇌경색이 발생해 늦은 밤 응급실로 왔었다. 증상도 심했고 비교적 빨리 내원했기 때문에 응급 시술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시술은 쉽지 않았고 결국 찢어져 막힌 혈관을 재개통시키지 못했다. 환자는 가망이 없었다. 더 이상의 시술은 무의미했기 때문에 영상의학과 교수는 시술을 중단하고 보호자를 시술실 안으로 불러 설명을 시작했다. 모친과 어린아이를 업은 아내가 들어왔다. 설명 듣기를 마친 두 보호자는 나와 영상의학과 교수에게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제발 살려달라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폭설이 쏟아지던 그날 새벽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