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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ropsia Aug 19. 2024

불볕더위는 누군가에게는 위험이다

한여름은 예나 지금이나 지내기 어려운 계절이다. 옛날에도 얼마나 어려우면 초복, 중복, 말복의 '복(伏)'자를 '엎드릴 복', '굴복할 복'자를 썼다. 너무 더워 사람(人)이 지쳐서 개(犬)처럼 엎드려 지내는 날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올해 여름은 복날이 아닌 날에도 '복(伏)'자의 의미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https://www.chosun.com/national/transport-environment/2024/08/17/ROL3IZGC3ZHXZAAQZM5UOFJC3E/


며칠 전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아이가 충치 치료를 받아야 해서 치과병원에 다녀왔다. 오전 11시 예약이었기 때문에 10시 50시 분경 병원의 야외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를 주차했다. 충치 치료는 대략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주차시켜 놓은 차에 탔더니 차량 내부 온도가 무려... 41°C 였다.


스티어링 휠을 잡은 손과 운전자 좌석에 닿은 엉덩이와 허벅지가 거짓말 보태서 녹아 버리는 느낌이었다. 서둘러 에어컨을 최강으로 틀었지만 유리창(틴팅된 유리가 가시광선과 자외선을 줄여준다고 하지만 이럴 때는 믿기지 않는다)을 그대로 통과하는 햇볕과 이미 달궈진 차량 내부의 열기를 어떻게 하기는 어려웠다. 더위도 피할 겸 서둘러 점심을 먹으러 근처 맥도널드 매장으로 갔다. 거기엔 나이 지긋한 분들이 꽤 보였다. 다들 햄버거가 아니라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크림을 앞에 두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더위를 피해 오신 듯 보였다. 다들 폰을 쥔 손을 멀찍이 쭉 뻗은 채로 온라인 세계에 빠져 계셨다. 나는 둘째와 햄버거를 먹으면서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OO아, 왜 이렇게 미치도록 더울까?
둘째: 지구온난화 때문에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나 보다)
나: 그럼 어느 나라가 탄소를 제일 많이 배출할까?
둘째: 모르겠는데
나: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거든. 그런데 지구온난화 때문에 기후 재난 발생하면 제일 피해 보는 건 못 사는 나라들이거든. 좀 불공평하지 않아?
둘째: 응
나: 그런데 선진국에서도 못 사는 사람들은 피해를 보고 있어. 잘 사는 사람들은 폭염에도 에어컨 마음대로 쓰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에어컨도 없이 이 더위를 힘들게 지내거든. 잘 사는 사람들이 에어컨 많이 쓰면 또 탄소배출은 늘어나고. 악순환이지.


대충 이야기도 마무리하고 햄버거도 다 먹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들어올 때 앉아 계시던 나이 드신 분들은 여전히 온라인 세계에 빠져 있었고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우리는 바깥에서 뜨겁게 달궈진 차에 다시 타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또 몸을 맡겼다.


보통 뇌혈관질환에 대한 걱정은 여름보다는 겨울에 많이 하게 된다. 겨울철이 다가오면 뉴스에서도 날씨가 추우니 뇌졸중을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환자들도 털모자를 챙겨 쓰고, 의사들도 날씨가 추워지면 응급실로 환자들이 밀려오지 않을까 걱정을 미리 하기도 한다. 하지만 겨울철에 실제로 뇌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지는 애매모호하다. 연구 결과마다 상반된 결과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폭염과 뇌졸중과의 관계에 대한 옥스퍼드대학 연구진의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연구진이 2006년부터 2020년 사이의 11,037명의 뇌졸중 환자들을 분석해 보니 야간에 높은 온도에 노출될수록 뇌졸중 중에 허혈성 뇌졸중, 즉 뇌경색의 발생 위험이 높았다.

https://academic.oup.com/eurheartj/article/45/24/2158/7676519


이 결과는 공중보건에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저소득 계층 사람들은 열대야가 지속되어도 에어컨 전기료가 부담되어 에어컨을 사용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에어컨이라도 있으면 정말 힘들 때는 틀 수도 있겠지만 선풍기에 의존해 여름을 지내는 노인들은 그대로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는 셈이다. 얼마 전 입추가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볕더위가 지속되고 있다. 올해가 역대 최악의 여름이라고 하는데 내년 여름이 기록을 경신하지는 않을지 벌써 우려스럽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무력감과 불볕더위로 인한 무력감이 함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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