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가 없다는 것은 자유롭지만 그만큼 부당한 것도 많다는 말.
식당 홀 서빙에서의 독일과 한국의 차이라면 자세의 높낮이 차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손님이 왕’이라는 모토가 오랜 세월 당연하게 자리 잡았고 서버도 고객도 그에 맞는 태도와 거리를 맞춘다.
독일은 고객도 사람, 서버도 사람이라는 의지에서 시작할 수 있다. 나의 업무가 당신에게 주문을 받고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지만 굳이 저자세를 고수할 이유는 없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내가 일하던 한식당은 참 애매한 경계선에 있었다.
한식당이지만 독일에 있었기에 독일스러운 서빙을 해도 전혀 문제가 없지만 고객의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사장은 무조건 소리를 지르며 서버들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컴플레인 건 손님의 인종을 묻는다.
그거 하나 제대로 대응 못하냐고. 지금 컴플레인 건 고객 놈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그러곤 무조건 해주지 말라는 오더가 내려온다. 그러나 고객 컴플레인이라는 것이 보통 서버-고객 선에서 해결이 가능하지만 반응이 격한 고객을 만나게 되면 고객이 직접 사장을 만나 해결하려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게 고객이 사장에게 찾아올 때면 사장은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것처럼 고객이 원하는 대로 전부 해준다.
이게 일하는 직원 입장에선 정말 욕이 나오는 상황이다.
애초에 고객이 원하는 대로 맞춰주려 사장에게 양해를 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 한 보따리와 거절. 그래놓고선 고객이 찾아오면 처음 듣는 일이라는 것처럼 응대해 버리니 중간에 낀 서버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서버-고객 간 얼굴 붉히는 일이 꽤 빈번했다.
사장의 이런 면이 나중에 많은 그리고 좋은 직원들을 떠나보내게 된 계기가 된다.
그거와는 별개로 나는 나대로 이 식당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다. 독일도 팁 문화가 존재하기에 평균 하루 매출의 10-15% 정도의 금액이 팁으로 추가되어 들어오는데, 이놈의 식당은 팁을 직원들에게 나눠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장은 일이 끝나고 마음껏 식사를 제공해 주기에 그거로 충분하다며 팁을 절대 직원들에게 주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은 당일 영업 종료 후 식사를 꼭 참여하곤 했는데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술 값으로 못 받은 팁을 대신하듯 들이붓는 일이 잦았다.
나는 알코올에 취약해서 술을 일절 하지 않았는데, 그게 내심 억울했다. 어차피 식사는 대식가가 아닌 이상 많이 먹어야 그 선이 정해져 있었고, 하루 종일 나와 동료들의 미소와 서비스를 제공해 얻어낸 팁을 그 식사로 대체할 순 없었다.
내가 일하던 동안 많은 직원들이 그 부분에 대해 사장에게 여러 번 피력했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싫으면 그만 나와~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아~ 한국 아새끼들은 왜 그리 욕심이 많나?’
다들 각자의 분노가 쌓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