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텅이
한 동양 아저씨가 건넨 명함엔 Ryotei-893이라는 이름과 개인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퇴근 후 찾아본 그곳은 퓨전 일식당이었는데, 올라온 사진만 봐도 굉장히 고급스럽고 음식가격도 꽤 나갔었다.
당시에 나는 내 본업인 성악에 굉장히 위축이 많이 된 상태에 매일 같이 소리 지르는 사장의 타박에 스스로에게 자신이 별로 없었다.
‘독일어도 아직 잘 못하는 내가 저기 가면 며칠 내로 잘릴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그렇게 그 명함은 쓰레기 통 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연락해 볼 용기만 있었어도 미래가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베를린은 독일에서도 역사적인 장소가 꽤나 많은 도시다. 그래서 독일 관광 코스로 베를린은 언제나 포함되어 있다. 당시엔 베를린에 한식당은 어디에 뭐가 있는지 훤히 알 정도로 그 수가 그렇게 많진 않았는데, 한국 관광 회사와 제휴를 하여 주기적으로 식당에 관광인 예약이 잡히곤 했다. 그러다 보니 현지 한인 가이드와 연락을 하는 일이 잦았고, 내가 겪은 그들은 마치 본인들이 아주 큰 건수를 식당에게 제공해 준다는 듯이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중에 한 여성 가이드가 굉장히 지독했다. 그녀는 계약서에 명시된 제공 메뉴를 넘어 부수적으로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일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일반 물, 탄산수만 제공되는 것에 본인만 주류며 차 혹은 커피는 당연하고, 식사도 그녀만의 특별식을 아주 당연하게 얘기하더라.
나는 그 시절 야비한 사람들을 혐오하였는데, 나도 모르게 태도가 퉁명스러워졌나 보다. 그녀가 갑자기 주문지를 작성하는 나에게 다가와 뒤통수를 때렸다.
‘너, 내가 쭉 지켜봤는데 왜 그렇게 태도가 불순해? 나 몰라? 어디 알바주제에 지금 가이드한테 이렇게 무례하니?‘
사람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 오히려 아무것도 못하나 보다.
나는 그냥 멀뚱히 그녀를 쳐다봤고, 무언가 설움이 마음 깊은 곳부터 솟구쳐서 눈물이 흐르더라.
그녀는 내 눈물에 당황하며 ‘앞으로 지켜볼 거야!’라는 말과 함께 다시 자리에 돌아갔고, 나는 여기서 또 문제를 일으키면 다시 잘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냥 속으로 삭혀야만 했다.
안 그래도 위축되어 가는 내가 이러한 일을 지속적으로 겪으니 나에겐 미래가 없는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되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