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12월, 졸업에 대한 설렘이 가득할 때 본격적으로 피아노 전공을 시작했던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남들은 다 하는 야자도 하지 않았고, 다들 석식을 먹으러 급식실을 갈 때 연습실을 가거나 혹은 레슨을 받으러 하교를 했었다.
나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학원에 다니는 다른 학생들도 하교를 하긴 했지만 일반 고등학교에서 예체능을 하기 위해 남들은 다 하는 걸 하지 않는다는 게 아직 어렸던 그 당시에는 그나마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점점 멀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니면 낯가림이 심했던 성격이 한 몫 한 걸수도 있다. 중학교까지만 해도 서로 친하지는 않지만 같은 학년은 웬만하면 얼굴과 이름은 거의 다 알 정로도 몇몇은 어린이집부터 같이 다녔던 애들이 수두룩 했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도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다녔고, 피아노 전공까지 같이 했기 때문에 낯가림이 딱히 나올 일이 없었기에 새로 생긴 고등학교에 입학한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완전히 친해지면서 마음을 열기 전까지는 이 말을 해도 될까, 저 행동을 해도 될까, 한 두번 더 생각을 하다보니 말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까 혼자 잠시 동떨어져 있기도 했었다. 20대 후반이 되어가는 지금은 아닐지라도 오히려 같은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던 그 때는 생각하기 보다 격 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게 더 친해지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나중에서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점점 혼자 있는 게 의도치 않게 익숙해졌던 것 같다. 2학년 말부터 갑자기 친해지게 된 친구들과 마지막까지 잘 지내고 졸업했지만 그 잠깐의 시기가 같은 무리의 눈치를 가장 많이 보는 나이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걸 부정할 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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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고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래 가고 싶은 친구는 언제든 만나긴 하는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도 했지만 그렇다고 혼자 지내는 걸 무서워하게 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 그런 경험을 했었기 때문에 남들은 외로움이라고 부르는 걸 고독이라고 칭하며 즐길 수 있게 된 건 아닐까 싶다.
뭐든지 배움이라고. 딱히 연애나 결혼할 생각도 없지만 누군가를 만나기 가장 좋은 시기는 혼자 있는 것이 행복할 때라고. 꼭 사랑하는 대상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혼자 있는 것이 외로워서 누군가를 만난다면 결국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이 많아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것이 행복할 때는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있을 때이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방에게 사랑을 주기도 쉬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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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인간관계가 좁은 걸 알고 있기도 하고, 애초에 좁은 인간관계에서도 적극적으로 연락을 하기 보다 서로 생각이 나면 연락하고 만나고 그 속에서 위로하고 축하하고 걱정하길 반복하다 보니까 외로움 때문에~로 시작하는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와 맞는 인연은 내가 굳이 매달리지 않아도 끊어지지 않는 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더 외로움 보다는 고독이라는 단어를 선택했고, 고독을 외면하려고 하지 않았다. 사람은 살아가는 인생의 대부분을 혼자 버티며 살아야 하고, 그 외의 시간을 타인과 보낸다.
나는 고독과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결국 살면서 해야 하는 모든 일은 나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것들 뿐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것에,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일도 당연히 있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고독을 좋아할 것이다. 그게 내가 나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