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교복을 입고, 같은 교과서를 사용하고, 모두 같은 시간표와 동일한 시간에 점심을 먹는 학창시절에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 정도가 심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공동생활을 하고 작은 사회 축소판인 학교에서는 성인이 되기 전에 미리 경험해 보기 위해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묶어 놓은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눈치라는 단어보다는 배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다.
사춘기가 지나고 자아 형성도 어느정도 되어가는 시기인 고등학교 때가 되면 주변 눈치를 보지 않는 학생들이 종종 눈에 띄는 걸 볼 수 있다. 돌려돌려 말하긴 했지만 쉽게 말하면 막 나가는 수준도 중학교 때와는 수위가 확연히 달라진다.
그럴 때면 '쟤네는 다른 사람 눈치를 전혀 안 보네, 안 부끄러운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요즘 뉴스에 나오는 미성년자 사건사고 스케일을 보면 철없는 애들이 하던 행동이라고 치부해야 할 정도이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학교가 전부였던 나에게 꽤나 충격인 것들이 종종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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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돌아보면 중학생 때는 눈치를 볼 일도 딱히 해 본적이 없고(새벽에 인소볼 때 빼고는) 오히려 사춘기도 오지 않아서 정말 심심하고 무난하게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고등학생 때 다른 학생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생각이 무의식에 있어서 그런가 1학년 때는 잘 어울리지 못했고,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고, 혼자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았었다.
그 시절이 소심하고, 자존감 낮고, 눈치 보고 이것저것 안 좋은 것들은 몽땅 쏟아 부었던 시기인 것 같다. 그러다가 2학년 후반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생기고 어울리면서 평범한 학생처럼 학교 생활을 마쳤고, 대학에 입학하고 부터는 성격이 바뀐 건지 아니면 원래 이런 성격이었는데 억눌렸던 건지 정말 잘 지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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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이라기 보다는 피아노 전공을 하면서 바뀐 점이라면 발표라면 공포증 수준으로 싫어했던 내가 콩쿨에 나가야 하기 때문에 몇 십명의 사람들 앞에서도 없는 사람들인 것 마냥 연주할 수 있는 스킬이 생겼다는 것이고, 틀려도 딱히 안절부절 하지 않아했고, 하고 싶은 말은 적극적으로 했으며 그 탓에 과대도 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가치관이나 어렸을 때부터 형성 되어 왔던 기질 자체는 쉽게 바뀌지 않거나 혹은 바뀌지 않는 반면 성격은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의 성격은 바뀌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고등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초반이 원래 있던 낯가림이나 소심함으로 나를 둘러싸버린 거였고, 그 막이 풀리면서 또 다른 성격으로 다시 둘러진 거라고 생각된다.
대학 때 만난 사람들이나, 환경, 여러 상황이나 사건들이 그것들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 같기도 하다. 지금도 여전히 낯가림은 심하고, 굳이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가가지 않고, 인간관계도 좁고 깊은 관계를 선호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적을 만든 적이 없고, 트러블에 휘말린 적이 없던 것을 보면 상황과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된 지금의 성격에 정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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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당히 보는 눈치가 누구에게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강약약강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눈치를 너무 봐서 한심해 보이는 사람인 반면, 진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눈치를 너무 보지 않아서 한숨이 나온다.
단체 생활을 하다보면 눈치가 정말 빠른 사람들은 오히려 눈치가 없는 척을 하고 눈치가 없는 사람은 해맑아서 좋겠다 싶고, 애매하게 있는 사람들은 정말 자기가 눈치가 빠르다고 믿는 걸까? 싶게 행동한다는 걸 한 번쯤 겪어 본 적이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차라리 애매하게 있느니 아예 없는 사람이 마음은 편할거라고 믿는 쪽이기 때문에 본인이 다른 사람 신경을 많이 쓰고,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잘 뜯어보면 호구 기질이 있다면 그냥 차라리 눈치 없이 마냥 해맑아서 머리 속이 꽃밭인 듯이 사는 걸 추천하는 편이다.
때로는 백치일 때가 내 심신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눈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눈치가 나를 살려주는 생명력 하트 역할을 한다고 믿어서이다. 너무 예민하면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필요에 따라 나에게 피해가 올 것 같은 상황이나 사람 등 여러 가지에서 벗어날 기회라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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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면서 눈치를 봐서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적은 없었다. 나설 때와 나서지 않을 때를 구분할 수 있게 했고, 살아가는 데 스스로를 지켜주는 정신 부분에서 강한 처신술 하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런 성격인 것에 감사할 때가 많다.
이제는 단체생활을 할 일이 딱히 없고, 소수로 활동하거나 혼자 일할 때가 더 많을거라 인간관계에 스트레스 받을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언제나 생명력 하트 하나가 계속 남아있을 걸 알고, 눈치는 언제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무기여서 든든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