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나이 들수록 가치가 떨어져

생각들 (2)

by 원더모스 Wondermoss

이번 설날에 작은 아빠한테 직접 들은 발언이다.


집에 와서 엄마한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애매하게 친한 가족이 제일 싫어. 짜증 나는 말을 들어도 참아야 하잖아.

사이가 안 좋으면 대놓고 말하고 다시는 안 가면 되는데."


그리고 이번 추석 전에 한국을 떠나는 나는 워홀이 끝나고 다시 한국에 와도 명절에 다시는 할머니 댁에 가지 않을 생각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명절 전에 혼자 얼굴만 뵙는 걸로 손녀 된 도리를 하려고 한다.


작년, 동덕여대 공학전환과 관련된 사건을 시작으로 딱히 관심이 없던 페미니즘에 정말 강력한 호기심이 생겨버렸고, 관련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변명이지만 지금은 집중해야 할 일이 있어 제대로 된 공부는 하지 못하지만 여유가 생기면 페미니즘 관련 도서부터 한 권씩 읽으려고 제목을 다 적어놨다.


사실 관심이 없었을 뿐이지 한국에서 잘못된 인식으로 번져있는 페미니즘을 싫어한 적은 없다.


그런데 며칠에 한 번씩 나오는 여자를 죽이는 범죄, 화장실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불법 카메라, 여자가 가해자일 때와 남자가 가해자일 때가 다른 뉴스 기사의 헤드라인, 똑같이 어린 20대 초반의 학생인데 여자는 표독하고 남자는 불쌍한 사회초년생, 현대 사회에서 여대는 역차별이지만 자사고에 남고가 여고보다 배로 많은 건 아무 말도 없는 나라, 워홀 가는 여자는 X녀 취급하지만 동남아 성매매 1위에 네팔에 한국 남자 전용 성매매 버스투어가 있어도 조용한 나라.


아직도 남녀 임금 격차가 OECD 1위인 국가에서 여자가 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나?

학생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내세우면서 공확전환 반대 시위를 하는 걸 보고 폭력 시위라고 하는 나라에서?

여전히 회사 면접을 보면 임신할 계획이 있냐고 대놓고 물어보는 나라에서?

2025년인 지금도 명절에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가치가 떨어진다는 개소리를 면전에서 듣는 나라에서?

9개월만 담배, 술 끊고 운동 열심히 하면 무정자증이 아닌 이상 정상 임신이 가능한데도 그걸 못해서 건강 다 망가지는 시험관 시술을 아내에게 당연히 권하는 나라에서?

그런데도 임신이 안 되는 이유를 여자에게 찾는 나라에서?


나는 결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닌데 왜 결혼을 하지 않으면 외롭고 평범하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할까.


왜 나의 가치를 결혼으로 증명해야 하는 거지.

나이가 들수록 배우는 것도 늘어가고 경력도 쌓이면 가치는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닌가?

근데 왜 여자는 반대로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는 거지?

그 말을 남자한테도 자연스럽게 내뱉은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 거지?


이 이상하고 어딘가 어긋나 있는 사회에서 잘못됐다고 발언하는 사람을 오히려 배척하는 사회에서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원하는 것을 하려면 그저 더 배우고 넓은 세상을 경험해야겠다는 다짐만 강해진다.


아직도 나는 나에 대해서 다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확신해서 말할 수 있는 몇 가지가 있다면,

나는 아이를 싫어하기 때문에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율에 기여할 수 없는 사람이고

나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혼자 있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외로움을 없앨 방법으로 연애나 결혼을 선택할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이고

나는 한 곳에 정착해서 살 성격이 절대 못 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나의 특성들이 오히려 얽매이지 않고 세상의 것들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요즘은 더 좋아져서 괜히 힘이 나기도 한다. 가족과 사이가 좋은 것은 별개로 부모님과 나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일만 생겨서 더 미련 없어진 것도 한몫한다.


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가끔 연락하면 자식 도리 하는 거지.


명절에 화가 나기보다는 이제는 저런 말을 내뱉는 상대방이 불쌍할 지경까지 와버린 상태에서 구구절절 써버린 글이지만 나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아직도 이 나라가 변할 수 있다고 믿는 몇몇 사람들의 생각에.


나는 이 나라를 깨끗하게 빨아 쓸 만큼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저 바꾸고자 노력하는 여자들에게 연대하고 지지하고 가끔 목소리를 내며, 공부하는 것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게 나의 최선이다.

작가의 이전글꼭 열정적으로 살아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