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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 달라 Mar 30. 2024

칠판에 귀를 그렸다

그럼에도 선생님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심호흡이 필요하다. 아니, 교문부터 시작이다. 복도 끝 교실이 눈에 들어오면 항상 뒷문을 살피는 호빵이의 모습이 보인다.


“선생님 오신다!”


호빵이가 큰 소리로 나의 등장을 알리며 후다닥 사라졌다. 매일 똑같은 패턴이다.


“얘들아, 안녕?”


교실에 들어서기 무섭게 아이들의 말이 쏟아진다.


“선생님! 저 오늘 준비물 안 가져왔어요.”


“그래? 빌려 쓰자!”


가방을 내려놓고 점퍼를 벗으려는데 루비가 다가온다.


“선생님, 지퍼가 안 내려가요.”


“이리 와. 선생님이 도와줄게.”


루비의 점퍼를 먼저 벗겨주었다. 나도 겉옷을 벗어 옷장에 걸고 카디건을 걸쳤다. 교실 뒤 편이 소란하다. 찐빵이가 소리쳐 나를 부른다.


“선생님! 호빵이가 때렸어요!”


의자에 앉을 새도 없이 새로운 민원이 발생했다.


“호빵이 데리고 오렴. 얘기 나누자.”


내 말을 들은 호빵이가 순순히 앞으로 나왔다.


“호빵아, 찐빵이 때렸니?”


“아니, 찐빵이가 저보고 야채빵이라고 놀리잖아요!”


“그랬구나. 찐빵이가 먼저 호빵이에게 야채빵이라고 놀렸어?”


“네, 제가 먼저 놀렸어요.”


“그럼, 둘 다 잘못이 있네. 누가 먼저 사과할까?”


“호빵아, 야채빵이라고 놀려서 미안해.”


“괜찮아. 나도 때려서 미안해, 찐빵아.”


아이들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에 금방 풀어져 자리로 돌아갔다.


특히 저학년 교실은 천진난만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들의 말이 끝없이 쏟아진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도 갑자기 생각나면 말해야 하는 아이들도 있다. 40분 수업 후 10분 쉬는 시간. 아이들만 쉬고 싶은 것이 아니다. 선생님도 화장실도 가고 싶고 조용히 앉아 물이라도 마시고 싶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엉덩이를 붙이려는 찰나 화장실에 갔던 루비가 급하게 뛰어들어왔다.


“선생님! 옆 반 사파이어가 저하고 친구 안 한대요!”


방금까지 갈라지던 목에 물 한 모금 적셨을 뿐인데 다시 시작이다.


“왜? 사파이어랑 싸웠니?”


“아니요! 어제 문구점에서 사탕 안 사줘서 저랑 안 놀 거래요.”


“그래? 선생님이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음…… 그냥 제가 가서 다시 놀자고 말할게요.”


“어……. 그래”


이날, 나는 칠판에 커다란 귀를 그렸다.


“얘들아, 오늘은 여기에다 얘기하렴. 그럼, 선생님이 다 들을 수 있단다.”


아직 새내기 교사였던 시절에 만난 저학년 친구들은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쉴 새 없이 부르는 소리에 진이 빠지기도 했었다. 발령 동기들과 만나면 ‘칠판에 귀를 그렸어’,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 공책을 만들었어’ 등 아이들의 쉴 새 없는 이야기를 받아내는 나만의 노하우를 방출하기도 했다. 


초등학교는 6년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학년을 수시로 넘나들기 때문에 변화무쌍한 아이들의 생리를 잘 이해하고 빨리 적응하는 것이 관건이다. 저학년으로 내려갈수록 생활태도를 잡아주거나 친구관계 형성에 선생님의 개입이 많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스스로 감정을 다스려보는 연습은 필요하다.


첫 번째는 또래를 이용하는 것이다. 속상한 마음은 친구들과 이야기해서 풀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는 연습을 통해 아이들끼리 평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두 번째는 ‘잠깐 멈춤’ 시간을 갖는 것이다.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면 들끓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러면 해야 될 말과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면 이미 많은 부분이 해결되어 몇 마디 만으로도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 


세 번째는 글과 그림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지금은 ‘생각 쓰기’공책을 활용해서 매일 두 줄 이상 그날의 감정이나 상황을 적도록 하고 있다. 쓰면서 마음이 정리되는 경우도 많고, 선생님은 여유로운 시간에 공책을 검사하고 ‘알고 있다’ 정도의 표시만 해도 아이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저절로 얻게 된 방법은 아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가 있었고, 그때마다 동료들의 좋은 방법을 적용해 보았다. 내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니 마음이 여유로워진 것도 있다. 지금도 3월이면 아이들끼리의 소통 방법을 익히는데 많은 노력을 들인다. 처음에는 일이 발생하기 무섭게 '선생님!'부터 찾던 아이들도 나중에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과의 시간이 힘겨운 후배들에게 칠판에 귀를 그린 선배도 극복 중이니, 여러분은 더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 saeedkarimi,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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