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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색깔

보라색에서 차분한 초록색으로

by 차분한 초록색

목소리 예쁜 사람이 부러웠다.

내 목소리가 예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그랬는지 노래하는 건 무척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늘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나는 인디 밴드의 보컬이 되어서 홍대, 신촌, 대학로 등지에서 공연을 했다.

오로지 음악만 생각하고 음악에 대한 걱정만 하며 살았던 때였다.

우울했지만 빛나던 시절이었다.


나름의 성과들은 있었다.

공연을 본 음악 관계자에게 연락을 받기도 하고, 대학교 축제 무대도 서고,

록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나름의 성과들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마치 불꽃이 일 것처럼 하다 꺼져버리듯.

나는 세상과 단절된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내게 남은 건 아주 깊은 우울함과 절망감뿐이었다.


절망 속에서도 할 수 있는 건 노래뿐이라, 나는 계속 노래했다.

내 노래를 듣고 누군가 말했다.


“목소리가 보라색 같아요.”


보라색 목소리는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지워져 버렸다.

나는 음악 없는 삶으로, 노래를 부르지 않는 삶 속으로 들어갔다.

그 삶 속에서 어느새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예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럽다.

노래는 하지 않는다. 내 목소리가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 아이가 말했다.

“엄마 목소리는 차분한 초록색 같아.”


보라색 목소리를 갖고 있던, 세상물정 모른 채 음악에 미쳐 살았던 젊은이는

이제 차분한 목소리를 가진 아이 엄마가 되었다.

보라색 목소리와 차분한 초록색 목소리의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무엇이 보라색을 초록색으로 바꿔놓은 걸까.


나는 ‘차분한 초록색’이라는 말이 너무나도 좋아서 자꾸만 되새겼다.

조금씩 내 목소리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보라색의 목소리를 갖고 있던 나는 어느 틈엔가 차분한 초록색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변화가 나는 기뻤다.


아직도 보라색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면 나는 조금 쓸쓸했을지도 모른다.

“엄마 목소리는 보라색 같아”라고 말했다면 나는 조금 침울해졌을지도 모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하듯 나도 변했다.

내가 변하면서 나의 생각도 행동도 목소리도 변했으리라.


세월에 따라 변해가는 것을 보고 슬픈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건 또 그것대로 슬픈 일이다


보라색의 목소리를 갖고 있던 인디 밴드의 보컬은 차분한 초록색 목소리를 가진 학부모가 되었다.

세상에 대한 관심도 없이 그저 음악만이 전부였던 보라색 목소리는 이제 입시 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부동산 정책은 어떻게 바뀌는지 세금은 또 얼마나 내야 하는지를 신경 쓰는 초록색 목소리가 되었다.

이다음에 나의 목소리는 또 어떤 색깔로 바뀌게 될까?



당신의 목소리는 어떤 색깔입니까?

무슨 색을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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