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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분한 초록색 May 03. 2024

피아노 콩쿠르

작년 겨울,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 봄에 있을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보지 않겠냐고 물었다.

내심 기뻤다.

아이가 인정받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머뭇거리기도 했다.

이런저런 학원 스케줄로 바쁜 아이가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서다.


원장님은 특별히 더 자주 학원에 나오거나 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해보고 싶다고 한다.

좋아. 그렇다면 경험 삼아 한 번 해보자!


곧이어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고, 방학 동안에 집중 연습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방학은 생각만큼 한가롭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학원 숙제에 치여서 매일매일이 학기 중인지 방학중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런 아이에게 피아노 연습까지 종용할 수는 없었다.

이럴 때 보면 나는 마음 약한 엄마다.


시간은 뚜벅뚜벅 한 치의 오차 없이 다가왔다.

드디어 지난주 토요일.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콩쿠르 대회장에 꽃다발을 들고 서있었다.


아이는 작년에 신었던 까만색 에나멜 구두를 신고 있다.

반짝이는 구두는 얼핏 봐도 작은 듯 발에 꼭 끼었다.


다른 아이들의 연주를 듣고 있자니, 내 아이가 점점 더 걱정되었다.


“엄마, 악보가 기억 안 나면 어떡해요?”

아이가 물었다.

“그냥 생각나는 거 계속 반복해서 치면 되지 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지만, 사실 나도 걱정됐다.


드디어 차례가 왔다.

멀리 객석에 앉아서도 긴장한 듯 잔뜩 굳은 아이의 표정이 보였다.


나의 지나친 걱정이었을까.

생각보다 잘 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만 웃음이 났다.

너무 좋아서.

이럴 때 보면 나는 영락없는 고슴도치 엄마다.



완연한 봄이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행궁동으로 차를 향했다.

가는 길에 아이가 노래를 들어도 되냐고 묻는다.

“아침에 갈 때도 듣고 싶었는데, 노래 듣다 보면 악보 외운 걸 까먹을까 봐 안 들었어요.”라고 말하면서.

내내 긴장했을 아이의 마음이 안쓰러우면서도 예뻤다.



식당 앞에는 이미 길게 늘어선 줄이 있다.

우리는 느긋하게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원장님으로부터 대회 결과를 알리는 문자가 왔다.


함께 나간 학원 친구들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지만, 그날 우리는 너무 행복했다.

나는 아이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피아노가 재미있으면 된 거야



그날 이후.

아이는 콩쿠르 연습 때 보다 더 자주 피아노를 친다.

“피아노가 재밌어졌어요.”라고 말한다.

그럼 됐다.

이걸로 대만족이다.



<이미지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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