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선정 Nov 11. 2023

야구장 가는 길

리마가 처음 맞는 여름방학 동안 아빠로서 뭔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지 남편은 몇 가지 계획을 세웠었다. 오늘은 그중 하나를 실행하는 날이다. 바로 야구장 가는 날.

프로야구팀 엘지 트윈스의 오랜 팬인 남편은 날마다 야구경기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아빠 옆에서 귀동냥으로 야구에 대해 알게 된 딸아이도 야구장 응원가자는 아빠의 제안을 신나게 받아들여 잠실 야구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리마가 4살 때 야구장에 간 이후 코로나로 몇 년간 야구장 갈 엄두를 못 냈다가 4년 만에 찾은 야구장은 즐거운 표정의 사람들로 활력이 넘쳐났다. 올해 성적이 좋은 엘지 트윈스 팬들은 우승을 향한 기대감이 얼굴마다 가득 차 있었다. 서둘러 입장을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핫도그와 콜라를 사서 자리에 앉자 눈앞에 넓은 야구장이 펼쳐졌다. 야구장을 보니 마음속에서 무언가 불끈 솟아오르는 느낌이다.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리마에게 야구상식을 차근차근 알려주는 남편을 바라보며 맥주캔 하나를 따서 시원하게 한 모금 마셔본다.

 

결혼 전 우리 가족, 그러니까 언니들, 조카들, 나까지 몇몇은 몇 년간 야구에 푹 빠져 지냈었다. 한창 사춘기로 집안에 몇 차례 굵은 소용돌이를 일으키던 큰 조카 혜인이가 어느 날 야구에 관심을 가지더니 야구장에 가고 싶다며 큰언니를 조르기 시작했다. 야구에 별 관심이 없었던 언니는 딸을 위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야구를 좋아하는 셋째 언니는 얼씨구나 좋다며 따라나섰고 야구를 전혀 모르는 나 또한 별다른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니 일단 한번 가보자 싶어 합류하게 되었다. 그렇게 결성된 야구응원단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야구로 똘똘 뭉치게 되었다.

 

우리는 고향팀인 기아 타이거즈의 팬이었고 주말에 문학경기장에 경기가 있는 날이면 뜨겁게 내리쬐는 땡볕도 두려워하지 않고 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때는 토요일 경기가 오후 5시에 시작했는데 비지정적을 예매한 우리 가족들은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2시간쯤 일찍 가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땡볕에 피자나 치킨을 먹고 있으면 귀가 얼얼한 함성소리로 경기의 시작을 알려준다. 선수들이 입장하면서 승리를 염원하는 두근거림으로 응원은 시작되고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선수들의 공하나, 야구방망이 스윙 하나에 함성과 탄식이 오고 갔다.

 

야구경기가 무르익을수록 같은 팀을 응원하는 경기장에 모인 관객들은 응원단장의 북소리에 맞춰 다 함께 부르는 응원가로 하나가 되어 버린다. 선수들 한 명 한 명이 가지는 응원가를 취학 전인 어린 조카들도 다 외워 목청 높이 불러댔다.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에는 4시간 내내 서서 소리를 질러대도 힘든 줄 몰랐다. 먹고, 마시고, 마구 질러대니 어느 순간 가족들과 야구장 가는 일이 내 삶의 낙이 되었다. 그렇게 있는 힘을 다해 응원을 하고 집에 갈 때쯤이면 경기에 이기건 지건 모두들 쉬어터져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즐거움을 나눴더랬다. 야구로 하나 된 우리 가족은 홈경기를 보러 가기 위해 광주까지 다니며 야구사랑을 실천했고 집 밖에서 방황하던 큰 조카는 야구를 통해서 다시 가족품으로 돌아왔다. 그해 우리가 응원했던 기아 타이거즈의 성적은 아주 좋았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 이후 몇 년간 우리 가족의 야구 사랑은 지속되었다.

 

한 타자가 홈런을 쳤다. 엄청난 함성 소리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니 땀으로 젖은 온몸으로 응원하며 우승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빠와 함께 열심히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리마를 보고 있자니 우리 가족의 힐링타임이었던 그때가 새록새록 떠올라 그립다. 6회 말 엘지 트윈스가 5:2로 이기고 있는 중이다. 리마가 “엄마, 엘지가 이겼어.” 한다. “리마야, 야구는 9회까지 있어. 9회가 끝날 때까지 누가 승리할지는 아무도 몰라. 그게 바로 야구가 재미있는 이유야.” 그렇다. 나는 야구가 그래서 재밌었다. 9회까지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게 했다. 이겼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뒤집히기도 하고, 졌다고 실망하고 있는데 역전승으로 더 큰 기쁨을 주기도 했다. 한 회 한 회 지날 때마다 울고 웃고, 야구를 인생의 축소판으로 비유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닌 것” 이보다 멋진 일이 있을까?

 

집에 돌아와 리마는 병원에 있는 조카에게 전화해 야구장 다녀온 이야기를 전한다. 혜인이는 “언니 야구 엄청 좋아하잖아!!” 라며 야구 이야기에 흥분했는지 목소리가 올라간다. 엘지 트윈스 팬으로 리마를 뺏겨 버린 것을 속상해하며 함께 야구장에 갈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기아 타이거즈가 꼭 가을야구에 진출해서 올 가을엔 역전의 응원 용사들이 야구장에서 다시 만나보길 바라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