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을 좋아하지 않는 딸아이가 유일하게 잘 먹는 과일은 귤이다. 마트에서 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귤 한팩을 사서 안겨주니 좋아서 입꼬리가 끝도 없이 올라간다. 저녁 먹은 후 열 개의 귤을 앉은자리에서 다 까먹더니 귤에는 어떤 영양소가 많은지 묻는다. “비타민C“가 많다고 했더니 그건 뭐에 좋은 거냐고 또 물었다.
”주름이 안생기게 해줘 “
”난 주름 없는데 “
”부럽네. 엄마는 주름이 많아졌어. “
엄마 주름 좀 없애자고 귤을 좀 달랬더니 한 조각 떼어 주고는 나머지 자기 입안에 쏙 집어넣는다.
며칠 후 자신의 얼굴에서 보조개를 찾아달란다. 요즘 아이가 읽고 있는 <빨강머리 앤>에서 보조개 이야기가 나왔단다. 아이의 웃는 얼굴에 예쁘게 들어가는 뺨의 보조개를 찾아주니 이번엔 엄마 얼굴에서 보조개 찾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보조개가 없다고 해도 계속 웃어보라고 성화였다.
”엄마, 여기 있네. “
”아니야, 그거 주름이야 “
”그럼 이거네 “
”그것도 주름이야 “
“엄마 주름이 이렇게 많아?”
”그러네, 엄마도 모르게 여기저기에 주름이 생겨버렸네. “
자연의 흐름을 무슨 수로 막겠나 싶어 별다른 관리 없이 지냈더니 한해 한해 눈에 띄는 주름이 많아졌다.
표정이 어두워진 딸아이는 갑자기 애기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다. ”우리 애기“라고 부르는 말에 정색을 하며 ”애기“ 아니라고 부르짖는 아이가 웬일인가 싶었다.
”엄마가 이렇게 잘 키워놨는데 왜 애기가 다시 되고 싶어? “
”엄마랑 더 많이 같이 지내고 싶어서.. “
아이의 말에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그런 걸 생각한 만큼 너는 어느새 컸구나.
”엄마, 이제부터 귤 많이 먹어. 엄마 주름 생기는 거 싫어 “
”그래 그럴게. 그리고 우리 앞으로도 같이 있을 시간 아주 많아. 엄마는 건강하게 오래오래 니 옆에서 살 거야. “
아이에게 말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건강하고 유쾌하게 아이 곁에 오래 머물러 줘야지.
좋은 엄마는 못되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엄마는 되고 싶다는 소망을 안고 열심히 살았더니 어느새 8년 차 엄마가 되었다. 그 사이 나이는 8살이 늘었고 주름도 나이만큼이나 늘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아 살아오면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고 가장 큰 웃음을 선물 받기도 했다. 그리고 벌써 다 커버린 것 같은 딸아이의 한마디에 감동하는 가슴 떨리는 순간도 많았다.
시간은 참 빠르게도 지나간다. 단풍이 물들 듯 서서히 깊어가는 가을만큼이나 엄마의 딸의 시간도 무르익어가고 있다. 이 가을을 지나고, 겨울을 또 보내면 나이는 한 살 더 먹고 주름도 늘겠지만 아이는 더 단단하게 자랄 것이다. 그래서 흘러가는 시간이 감사하다. 앞으로도 우리는 지지고 볶으면서 수많은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서로의 체온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