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지 말자. 잘 못 지내지도 말고.
어쨌든 자매다.
20개월 터울을 가진, 하지만 첫째는 1월, 둘째는 이듬해 10월에 태어나 연 나이로 연년생인 자매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니바라기 둘째 덕에 아이들이 트윈룩을 입고 나갈 때면종종 쌍둥이냐는 질문도 받는...
비슷하게 자라버린 만 5세와 만 4세.
하지만 생기기로는 각기 엄마와 아빠를 확연히 닮아 거의 다른 집 자식 같은 자매다.
생기기만 그런가, 똑같은 식판에 식사를 내어도 선호하는 음식이 판이하게 달라 식사를 끝내고 남은 음식을 합치면 새로운 한판이 나올 정도로 취향도 다르다.
국만 먹는 아이, 국만 남기는 아이.
고기만 먹는 아이, 계란만 먹는 아이...
어느 날은 등원길에 한 아이는 빨리빨리 도착하고 싶고, 한 아이는 쭈그려 앉아 놀고 싶고, 나는 갈림길에 서서 오도 가도 못하고 목청만 커졌던 적도 있다.
하나는 챌린지를 원하고, 하나는 안정을 원한다.
하나는 주목받고 싶고, 하나는 수줍다.
첫아이만 있을 땐 내가 아이를 "그렇게 키웠"는 줄 알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지 않을까. 그래서 잘 자란 아이를 둔 부모는 으쓱해지고, 더디 자란 아이를 둔 부모는 죄스러워지는데.. 그렇지가 않다. 확실히 말할 수가 있다.
아이를 내가 키운다는 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가.
내가 어릴 때 말을 많이 걸어줬지. 내가 아이의 발달을 잘 챙겼지. 하는 뿌듯함을 느끼지 말라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 조금은 죄책감을 벗어보자는 얘기다.
나는 하나고, 내 육아법은 동일했다.
20개월이라도 짧은 터울이므로 육아용품도 거의 같았고, 남편도 같았다(!) 유전자를 제공한 한쌍이 같고, 양육환경이 같아도 둘째는 완벽이 다른 모습으로 자랐다.
그것이 생물학적으로 진화한 방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다양한 개체를 생산해야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이유에서 그렇다고. 썩 그럴듯하다.
그런데 요즘 같은 세상에 다양성은 개성일 뿐 생존에 유리한가...
오히려 한집에서 생활하기에 너무 다른 둘은 부딪힐 일이 너무 많다.
이것이 평범...
그렇다면 평범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도록 눈만 맞추면 싸우는 자매가 우리 집에 산다.
모든 자매가 그러하듯이...
아이가 없던 시절의 내가 꿈꾸던 자매의 평범함은 사실 이런 싸움꾼 들은 아니었다.
소곤소곤 키득키득 깔깔대며 노니는 여성스러움. 어딘가 믿음직한 맏딸은 살림밑천이라고들 하고, 애살스런 둘째는 온 가족을 두루 챙기며 하하 호호 행복한 가족이 되기 딱 좋은 자매라는 이름의 환상이었다고 해야겠다.
물론 나의 평범함은 1퍼센트인지라 모두의 자매육아가 이다지도 고단할까 싶지마는...
각기 다른 고단함을 안고 사는 우리가 아니었던가.
모두 자신만의 1퍼센트에 열심인 우리가 아닌가 말이다.
어느 날 동생과 싸운 뒤로 섭섭함이 그득 쌓인 첫째가 이렇게 말했다.
"동생이 하늘나라에 갔으면 좋겠어."
나는 이 무슨 끔찍하고도 무서운 소리인가 화들짝 놀라
그건 아주 나쁜 마음인데 어째서 그렇게까지 무서운 생각을 했느냐고,
아이의 언어도 다 모른 채 대꾸했었다.
"그야,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엄마를 골라 내려왔으니까..
그리고 내가 먼저 왔으니까.. 동생은 다시 돌아가면 좋겠어."
라는 것이었다.
지극히 아이다운 원상복구의 개념이었을진대,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어른의 언어로는 해서는 안될 금기어였던 것이다.
소위 "너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고 싶었던, 하지만 돌아갈 집이 우리 집인.. 그런 존재에게 할 수 있는 말을 찾고 또 찾았을 첫째가 안쓰럽기도 했다.
어쨌든 자매다.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 문을 열고 나왔는지 닫고 나왔는지를 재미 삼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첫째는 "으응, 엄청 빨리 나오고 뛰어가지고 문 쾅 열고 나왔지!"라고 했고
둘째는 "문을 열고, 나오고, 문을 닫았지"라고 했다.
참 신기하다 싶음도 잠시...
몇 개월이 지난 뒤 첫째 아이 생일즈음 아이가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었다.
"엄마, 나 생일이면 다시 그날로 돌아가보고 싶어. 너무 궁금해. 내가 문을 잘 닫고 나올걸..."
아이에게 동생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 걸까.
더없이 큰 선물이 될 텐데, 아니 그러면 좋겠는데..
나는 둘이 잘 지내기를 바라기를 포기했다.
그저 둘이 잘못 지내지 않기를 바라기로 했다.
괜히 같이 놀다 싸우지 말고, 따로 놀아보는 것...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
그냥 내버려 두는 것...
아이에게 바라는 바를 수정하면서
이런 자세를 부부사이에 적용하면 그 또한 평화롭지 않을까
불현듯 내 자세를 고치게 되기도 한다.
가족이란 게 그렇지. 원하지 않아도 엮여있다.
원해서 함께한 사람은 오직 둘뿐이다.
하지만 진짜로 그럴까.
첫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다가 나는 그게 진짜라고 믿게 되었다.
"네가 문을 잘 닫고 나와도, 동생이 우리 집에 오기로 마음먹었다면 언제든지 그 문을 열고 왔을 거야."
첫째 아이도 내 바람대로 찾아와 준 게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우리는 한동안 난임센터를 다녔었고,
아이는 하늘이 주시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내가 바라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아이가 원해서 찾아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겸손이고 감사의 마음이었다.
평범한 자매를 키우는 평범한 그 일이,
매일매일의 숙제 같다가도..
나와 남편을 골라 찾아와 준 아이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지금 비록 조금 불편하더라도
함께하는 법을 잘 배워 나간다면
한 30년쯤 지난 뒤에는 비로소 잘 지내는 자매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잘 못 지내지 않으면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는 건 그런 거니까.
평범한 가족이란 그런 거니까..
구성원 수만큼의 다름이 있는 채로 어우러져야 하니까.
하하 호호 행복한 환상의 가족 말고, 평범한 가족이 되어야겠다.
사실은 그런 평범함이 크나큰 행복이니까.
아이들도, 부부들도.
잘 지내려 애쓰지 말고,
잘 못 지내지 않는 하루.
오늘도 특별히 평범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