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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소소 Nov 23. 2023

< D-70 > 명함 뒤에 숨지 않을 자신

지나간 걱정들은 한없이 귀여워진다.






일기를 뒤적이다 이 부분을 옮길까 말까 한참 고민했습니다.


지금은 애 둘 낳고 복직도 해서 일도 육아도 병행하고 있지만

그날의 일기 속엔 '요점 없는 자기 연민' 그런 느낌이 가득했기에


분명 나를 가득 채운 고민이었음에도

어쩐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과거의 나에게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지금의 내가 해야 할 몫이었지요.




‘그냥...


상당히 낯설었다고.’



머쓱한 지금의 나로선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부끄럽기도 쑥스럽기도 한 나의 일기.



그럼에도 한번 그려보기로 한 까닭은

어떤 이들에겐 이제 새롭게 직면한 낯섦 일수도 있을 것이기에



먼저 한참 휘적거려 본 방황자의 입장에서

어떤 선택도 옳을 것이라는 위안이 될 수 있을까 해서였습니다.



한편 이 육아 에세이에 솔직해지고 싶어서 이기도 하고요.




공감도 좋고 위로도 좋고 하소연도 좋아요.

다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그럴 때가 모두에게 있었다는 사실

이런 것들이 힘들었던 순간들을 버티게 해 줬기 때문에


이 작은 화면 속에서

육아에 지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






그래 상당히 낯설었다.

취업이란 목표를 일찍 가진 학창 시절부터

미대입시, 졸업, 취업.. 에 이르는 길고 어려웠던 시간들 속에서

늘 바라고 기다리던 한 단어는 '퇴사'였는데…

막상 퇴사를 염두에 두고 나니 

퇴사한 나의 이미지가 상당히 낯설었던 거다.



낯설어서 조금 겁을 먹었던 거다.



딱 이 무렵의 가을날이었다.

휴직계를 낼 계획이었지만 결국은 회사를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그러라고 한 적 없는,

임신과

그러라고 한 적 더더욱 없는,

퇴사 생각..



감사하게도 휴직과 복직이 자유롭고 가능도 한,

또 육아와 병행하여 업무를 보는 여자 선배들도 멋지게 자신의 역할을 해 내고 있는 회사였기에

임신과 더불어 퇴사하는 사람은 있지도 않았건만..


바라고 바라던 퇴사를 아이를 빌미로 저질러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연년생을 양가 부모님 도움 하나 없이

쌩혼자(?) 키워야 하는 요즘은

다른 의미로 퇴사를 고려하고 있지만


원하는 방향이 -하는 쪽보다는 -안 하는 쪽이 된 지금

고작 임신한 주제에 휴직도 안 했으면서 참 별 생각을 다 했구나

부끄럽다.




과거의 고민들은 이렇게 하찮고 귀여워진다.



그렇게 퇴사를 원했으면서도


막상


한 손에 한 잔씩 거머쥔 커피와 함께

찬 바람 따뜻한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잠시 잠깐 팀원들과 여유롭게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는

평범하고도 소소한 일상이 그리울 것 같아서였을까.


하물며


아이디어 회의를 해야 되는데 도무지 더 이상 떠오르지 않는 머리를 쥐어짜며

핀터레스트에서 보고 또 봤던 제품 이미지를 무한 리서치 하다 소득 없이 퇴근하고

샤워 도중 아이디어가 떠올라 물기도 다 못 닦은 손으로 

휴대폰 메모장을 켜며 안도하던 날들조차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소소하게 이루어낸 나의 성과들이

손바닥 보다 작은 명함에 아로새겨진 비루한 인간이었다.


학점 학자금 전공 취업 신입시절 진급 같은 것들을

회사이름과 직책 같은 것들과 맞바꾼..


명함을 잃은 나는 무명의 인간 같았다.


나의 20년의 수고로움의 결과가

점심시간 옥상 정원 산책과 함께 사라질 예정이었다.


(도대체 누가 시켰냐고 라는 말이 내내 입속을 맴돌지만

어쨌거나 아이 = 퇴사 아니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기에...)



엄마가 될 준비를 한다는 건 지금의 나와 영영 이별해야 한다는 무게가 있었다.

엄마가 된 나를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회사원인 나를 놓아주려니 그토록 슬프고 겁이 났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명함을 나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지낸다.


그때 나는 엄마라는 명함을 받아 들고서야 비로소 
명함 뒤에 숨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해 들여다보게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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