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마 Dec 21. 2023

번개탄과 샴푸와 영양제

그때 죽지 않아서 느끼는 것들


1. 번개탄


2019년 5월. 침대 밑에 번개탄이 있었다. 나는 죽고 싶다기보다는 죽어야 했다. 하루 온종일 머릿속에 팝업창처럼 '나는 죽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걸 어떻게 끌 수 있는지 몰랐다. 번개탄을 사고 나서야 나는 조금 떳떳한 사람이 되었다. 


죽기를 결심했으나 어쩐지 살아 숨 쉬는 날들이 이어졌다. 4학년 1학기였다. 모든 걸 내팽개치지도 못한 채 수업에 가고 국가근로도 했다. 내가 죽어야 한다는 믿음의 기원도 근거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무력하게 복종했다. 횡단보도 초록불을 기다릴 때면 차에 치이지 않겠다고, 살겠다고 멈춰 서서 기다리는 그 순간이 끔찍하게 길었다. 살아서 하는 모든 행동들이 수치스러웠다. 


벌레를 싫어한다. 그런데 내가 그 벌레 같았다. 충분한 공격을 당했는데도 죽음의 순간을 무의미하게 유보하듯 발버둥을 치는 벌레 같았다. '꾸역꾸역' 살아있는 나를 경멸했다. 내가 무슨 죄를 그렇게 지었느냐고, 왜 내가 죽어 마땅한 사람이냐고, 나를 위해 소리치는 목소리는 내 안에 없었다. 


심리상담을 그만뒀다. 기억나지 않는 핑계를 대면서. 상담을 받는 동안은 죽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상담사선생님이 내 죽음에 목놓아 우시진 않겠지만, 결코 반가운 소식은 아닐 테니까. 그분을 배려하는 마음보다는 이런 이유가 내 죽음을 방해하는 것이 싫었다. 




2. 샴푸


갈수록 수업을 나가지 않았고 근로만 겨우 나갔던 것 같다. 혹시 내가 안 죽고 살게 되면 무단결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근로는 빠지지 못했다. 나는 번개탄을 사놓고도 내가 죽지 않을 경우까지 신경 쓰던 머리 복잡한 사람이었다. 


밖에 나가는 날이 아니면 씻지 않았기에 주말이 되면 꾀죄죄한 몰골이 됐다. 어느 날에는 좀 더 결단이 섰다.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록 오늘은 아닐지라도 죽음이 코앞에 온 것 같아 떳떳해졌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이 꼴로 죽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이왕이면 좀 깨끗한 모습으로 죽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샤워를 하려고 보니 샴푸가 없었다. 나는 샴푸가 떨어지기 전에 항상 새 샴푸를 미리 사뒀다. 그러나 죽을 결심이 견고해지자 새 샴푸를 구비해 둘 필요성이 사라졌다.


샴푸를 사러 밖에 나갔다. 그 와중에도 할인 제품을 샀다. 죽을 마당에 돈 아껴 무엇하냐는 내 안의 비웃음은 덤이었다. 


머리를 감는데 샴푸에서 향이 났다. 그 샴푸의 이름도, 용기 디자인도, 향의 종류도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향이 났다. 죽은 영혼에 걸맞지 않게 감각기관이 제 할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게 우스웠다. 그런 동시에 내가 더 살아있으면 어떤 향이든 더 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그 샴푸향이 나를 다음날 다시 병원에 가게 했다. 진료실에서 고해성사를 했다. 전부터 이어지던 입원 권유를 마침내 받아들였다. 질병휴학 처리를 하고 입원했다. 




3. 영양제


나는 그렇게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게 거짓이라면 더 그럴듯한 얘기를 지어냈을 거다. 그러나 정말로 동아줄은커녕 지푸라기만도 못한 것 같은 그 사소한 향기를 붙든 덕에 나는 지금 살아있다.


그러나 샴푸가 아니었더래도 나는 무엇이라도 붙들었을 것이다. 늘 눕던 침대의 아늑함이든 서늘한 새벽 공기든 그 뭐든 간에. 살고 싶은 내 마음이 나를 구했다.


그러고 나서도 또 몇 번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다. 별일이 없을 때도 이따금 우울의 늪에 빠졌고 얼마 전에는 정말로 별일이 생기기도 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내 얘기를 듣곤 날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하셨다. 스트레스성 구토에 시달리며 욕실 의자에 앉아 새벽 내 속을 게워냈다. 그때 죽었으면 이런 일은 겪지 않을 텐데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내 의지로 영양제를 챙겨 먹는 날이 오기도 했다. 아파 죽을 지경도 아닌데 그냥 더 건강해지려고 약을 챙겨 먹는 일은 내 사전에 없었다. 그러나 살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기왕 살아있을 거 더 건강하고 싶었고 더 행복하고 싶었다. 


영양제를 먹는 내 모습이 좋았다. 어느 해 내 신년목표는 '자살 안 하기'였다. 그런데 이제는 더 나아가 '잘' 살고 싶은 마음까지 생겨났다는 게 뭉클하고 반가웠다. 




번개탄과 샴푸와 영양제. 내 삶의 소재가 더 무엇이 될지 아직 나는 모른다. 다만 나는 살고 싶은 내 마음에 솔직하기로 했다. 그리고 떳떳하기로 했다. 내 삶이 어떻게 이어질지 두렵고 걱정되는 마음보다는, 어떻게든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지금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울증 아닌데 조울증 약 4년 먹은 썰.txt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