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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마 Dec 28. 2023

서울대에 가고 보니 ADHD였다 (3)

어느 성인 ADHD의 대학 생활

서울 가서 혼자 어떻게 살지?

서울대 합격을 확인 후 체감 3초 후 뇌리를 스친 걱정. 예언자 수준의 직감이었다. 정말로 한 3초쯤 짜릿하게 기뻤고, 그 직후 내가 철저히 외면했던 문제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사실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혼자 내 생활을 잘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가족 한 명 없는 타지에서 '야무지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건 금전적인 문제와 별개였다. 대학 입학 전까지는 내가 '내 앞가림' 못 하는 사람이란 것을 깨달을 기회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건 어떤 사례나 증거를 들어 입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주 막연하고 모호하되 나 자신만큼은 날카롭게 느낄 수 있는, 경고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한 학기를 다니고 휴학했다. 휴학계를 제출하니 의대 가려고 반수 하냔 질문을 들었다. 반가운 오해였다. 달리 정정하지 않았다. 사실은 어떠한 계획도 없었다. 이대로 더 다니면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망칠 것 같은 불안감에서 도망치고 싶을 뿐이었다.


첫 학기 동안 별다른 일이 있진 않았다. 여느 새내기처럼 온갖 행사와 모임에 참여하고, 대학 생활에 적응하고, 그새 친해진 동기들과 어울려 다녔다. 꼬집어 말할 만한 큰 어려움이나 고민거리가 있지도 않았다.


나를 무너뜨린 건 그 별일 없는 일상 가운데서 요란스럽게 허덕이는 내 모습이었다. 날이 갈수록 어딘가 남들과 다르다는 느낌이 선연해졌다. 내가 나의 24시간을 책임지고 나를 간수해야 한다는 게, 그 당연한 사실이, 창피할 만큼 버거웠다. '오늘 한 일 목록'에 굳이 쓰기 민망할 정도의 아주 작고 사소한 할 일들을 해치우는 것만으로 에너지가 전부 소진됐다. 학업과 같은 정말 중요한 것들에는 힘을 써보지도 못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몰랐다. 늘어난 선택과 자유가 되려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대학에 와서 보니 나는 터무니없이 쉽게 지치고 덜떨어진 사람이었다.




1년간 우울증으로 진단되어 치료를 받은 후 복학했다. 오래 쉬고 온 덕인지 초반에는 활기가 생겼지만 날이 갈수록 지쳤다. 정신과를 계속 다니면서도 약의 효과란 게 도무지 뭔지 알 수 없었다. 자기주도성이나 성실성 같은, 내가 믿고 자부하던 특성들이 깨지고 어긋나는 꼴을 두 눈 뜨고 지켜보는 게 비참했다.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에 왔고, 대학에 왔으니 다시 공부해야 하는데, 전처럼 공부할 수 없었다. 내가 그러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교실에서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업을 들었다. 까무룩 졸면 이름이 불렸고 숙제를 안 해가면 지적을 들었다. ADHD에게 대학이란 잔인할 정도로 자유롭다. 애를 써야 집중하고 노력할 수 있는 사람에게 애쓰지 않아도 당장은 아무 페널티가 돌아오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까지 내 자발적 동기와 의지로 공부했다고 믿었던 건 사실 착각이었던 것 같다. 나를 아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당장 돌아올 실망의 눈초리를 피하고 싶었다. 대학에 오니 아무도 내게 기대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도 실망하지 않았다.




자리에 가만 앉아있는 게 힘들었다. 집중이 되지 않았고 지루했다. 강의를 듣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것 같았다.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진학한 사람이 보일 수 있는 행태라기엔 스스로도 기가 막혔다. 어쩔 땐 정말로 중간에 나가서 연못에 앉아있다가 왔다. 자하연을 지극히 사랑해서 보러 간 게 아니라, 어딜 향할지도 모른 채로 어딘가로 나가고 싶었고 그러다 보면 달리 갈 데가 그곳 말곤 없었다. 그러고 나면 그곳도 금세 지루해져서 다시 강의실로 갔다. 교수님 말씀을 모조리 적어버릴 기세의 독기 서린 타이핑 소리를 들으면서,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서울대에 '학관밥'이란 게 있었다.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모여 상담사와 함께 밥을 먹고 얘기를 나누는 지지공동체였는데, 정작 나는 여기에 낄 수 없었다. 신청 대상 조건에 해당하지 않았다. 학사경고를 받지 않았고 학점이 2.4 이상이었으므로. 2019년에 정신과에 입원하면서 두 번째 휴학을 했는데, 그 후 복학하면서 서울대 보건소 정신과에 예약을 잡으려 하니 두 달 뒤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분명 이 학교 어딘가에도 나 같은 사람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았는데, 정작 나는 그들의 얼굴도 못 보고 말 한마디 나누지 못한 채 졸업했다.




"할 일을 심각하게 미루는 습관이 있으신가요?"

"네."

"언제부터 있었던 것 같으세요?"

"평생..."


올해 ADHD 진단을 받기까지 의사 선생님께서 정말 많은 질문을 던지셨다. ADHD 진단을 위해 흔히들 한다고 하는 CAT검사는 받지 않았다. 위의 대화도 그 과정 중에 있었다. '평생'이라는 단어로 대답할 때 허를 찔린 듯 부끄럽고 착잡했다.


"우울해서 할 일을 미룰 수 있지만, 반대로 할 일을 미뤄서 우울해질 수도 있어요."


우울과 지연행동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당연히 우울해서 할 일을 미뤘을 것이라 생각했다. 모두가 내게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집중을 할 수 없다고 아무리 호소해도 나를 거쳐간 그 수많은 의사 선생님들 가운데 누구도 그 점에 주목하지 않았다. 우울해서 집중을 못 하는 것이라 했다. 3차 병원까지 다니며 신경인지검사도 받은 적 있다. 주의력 검사에서 정반응수, 누락오류수, 정반응시간 항목에서 중등도의 수행 저하를 보였다고 결과지에 적혀있었으나, ADHD는 고려되지 않았다.


정말로 할 일을 미뤄서 우울했던 걸까. 그제야 관점을 바꿔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늘 시험기간이 고비였다. 남은 1초도 낭비해선 안 될 것 같을 만큼 데드라인에 임박하고 나서야 몸이 움직여졌다. 초조하고 불편한 감각 속에서만 내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가장 모질고 혹독한 말을 스스로에게 퍼부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경험을 통한 학습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늘 다시 후회했다. 가끔은 나긋한 말로 달래 보기도 했다. 그래도 바뀌는 건 없었다.


할 일을 미루는 문제는 철저히 의지의 영역에 속해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 치부고 잘못이었다. 그게 증상이고 그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생각은 못 해봤다. 죄인에서 비로소 환자가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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