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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마 Jan 06. 2024

자존감을 흉내 낸다는 것

당신들을 질투한다

매력이 있어야 자존감이 생기는 게 아니라, 자존감이 있어야 매력도 생기는가 보다. 고로 자존감 있는 사람들은 매력도 더불어 갖고 있고, 없는 사람들은 서럽게도 둘 다 없다. 난 이걸 이제야 알게 됐다. 그러나 없는 자존감을 가장하는 게 무의식적 생존스킬이었는지, 자존감 높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용을 쓰며 살아왔다. 힘을 내서 웃고, 광대처럼 장난을 치고, 넉살 좋은 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로 났다. 혹은 늘 탄로 났는데도 나만 그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얼마 전 취업을 했다. (어떤 의미에서) 대외적으로 나서는 일을 하는데,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곳 얼굴로서 나서는 거니 자신감이 없더라도 그걸 드러내선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익숙한 피드백인 것처럼 마음 안 다친 척했지만 사실 놀라고 슬펐다. 난 이제 내가 사람들 앞에서 꽤 자신감 있게 보이는 줄 착각했다. 안 아픈 사람처럼 보이고 정상으로 보이는 줄 알았다. 이만하면 얼추 평균치의 자존감을 가진 사람인 줄 믿고 있었다. 그런데 나만 몰랐고 사람들은 다 안다. 내가 여전히 자신 없다는 사실을. 아직도 남들에 못 미친다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밉다. 당신들을 질투한다. 내가 애써 흉내 내고 가지려고 애를 쓰는 것을 당연한 듯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밉다. 내가 자존감이 낮다는 걸 너무 쉽게 꿰뚫어 보는 게 무섭다. 사실은 어디서 티가 나는지도 모르겠다. 돌아서는 찰나에 표정이 지워질 만큼 나를 소진시켜 가며 열심히 웃고 밝게 떠들었는데, 도무지 내 어디에서 알아채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늘 건강해 보이고 싶었다. 늘 정상으로 보이고 싶었다. 어쩌면 이런 집착이 나를 더 아파 보이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헌혈을 했다. 정신과약을 먹는 사람은 다 헌혈이 안 되는 줄로 알았는데, 전화로 미리 문의하고 헌혈의 집에서 다시 얘기했는데도 문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정신과 환자가 된 이래로 처음 헌혈을 했다. 건강한 사람만 할 수 있다는 그 헌혈을 내가 했다는 게 기뻤다. 헌혈의 의미나 가치 따위는 내 알 바 아니었고, 단지 잠시 정상인 지위에 오른 것 같아서 기뻤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기쁨도 내 몫이 아니었던 것 같다.


거울을 한참 동안 봤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지 좋아하는지 가늠하려고 한참을 봤다. 또렷이 알 수 있는 건 내가 나를 낯설어한다는 사실뿐이었다. 이런 이름을 갖고 이런 얼굴을 한 나를 이 나이 먹고도 아직 낯설어하다니. 왜 나를 못 받아들이나, 왜 나를 좋아하지 못하나, 왜 나를 감싸지 못하나, 타이르듯 되뇌어봐도 당장 오늘밤에 내가 변할 것 같지 않다. 


항우울제를 먹고 ADHD약을 먹으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고 느꼈다.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은 충분히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이만하면 평범하고 건강한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남들 눈엔 여전히 아니란 걸 깨달으니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다. 


자신감이 뭐고 자존감이 뭘까. 흉내 내도 금세 탄로 나서 우스워지게 만드는 그것들이 대체 뭘까. 내 얼굴이 낯설지 않고 내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순간순간이라는 게 도무지 뭘까. 그것들이 정말 내 것이 되는 순간이 오기는 올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걸 인정하기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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