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오랑주리, 수련에 기대어

나는 오늘,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by 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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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두 번째 날,
눈은 배부른데 마음은 허기진,
이상한 감각이었다.


루브르는 그 위대한 존재감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했고,
나는 그 안에서 너무 작아졌다.
예술이 거대할수록,
나는 점점 투명해졌다.


정말 보고 싶은 건,
사람들 사이에 끼어 발끝만 겨우 닿는 모나리자가 아니었다.

나는 조용한 풍경 속에 앉아
한없이 느려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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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 미술관.


파리의 정오, 햇살은 부드럽고 거리엔 사람들이 넘쳤다.

그러나 그 순간, 가장 조용한 곳은 미술관 안이었다.


세상의 소음이 끊기고, 숨결까지 느리게 흐르던 그 공간.

나는 오랑주리 미술관 한가운데,

모네의 수련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사방이 캔버스인 방 안에 들어서자
모든 소리가 천천히 물 위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세상의 가장 안쪽에 도착한 것 같았다.


그림은 말이 없었다.


그런데 모든 말보다 깊은 위로를 건네왔다.


빛도 없이 피는 수련의 고요함,

바람조차 이 그림 앞에선 멈춘 듯했다.

수련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움직였다.


이방인의 마음을 알아본 듯,

그림은 조용히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한참 동안 말없이 그 앞에 머물렀다.


누구도 말 걸지 않았고,

나 또한 어떤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 풍경에서

나는 잠시 내 인생의 속도를 잊었다.




밖으로 나오니,

튈르리 정원의 바람이 모네의 붓결처럼 느껴졌다.


점심도 먹지 않은 채,
정원 벤치에 앉아 조각 케이크 하나를 나눠 먹었다.
별거 아닌 순간인데,
그림보다 더 오래 기억될 것만 같았다.


쁘띠팔레에서 잠시 머물다,
우리는 파리 시내를 흐르는 강처럼 느릿하게 흘러갔다.


그날 하루가
작고 조용한 수련 한 송이처럼
기억의 가장 깊은 연못에 가라앉았다.




예술이란,
가슴을 두드리는 감탄보다
숨결처럼 곁에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랑주리를 나서던 순간,
나는 알았다.
모네의 수련 앞에서 울지 않기 위해
나는 너무 많은 걸 참고 있었단 걸.




그림은 걸려 있었고,
나는 그 앞에 조용히 기대어 앉았다.


엄마가 내 옆에 있었고,
나는 더 이상 작지 않았다.


이제, 내 마음속 정원엔
그날의 수련이 조용히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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