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나는 엄마의 바람을 걷는다

유럽 17박 18일 그리고 천만 원의 기록

by 이연

초등학교 4학년.
엄마와 걷던 늦여름 오후.


엄마가 물었다.
“아가, 너는 꿈이 뭐니?”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날 바람이 좀 셌다.
엄마는 그 바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우리 딸이랑 세계 여행하는 게 꿈이야.
엄마는 못 갈 것 같지만…
그래도 바람이 되어서, 너의 여행길에 불어줄게.”


나는 그 말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누군가의 바람이 된다는 것.
멀리 가지 못한 이의 꿈을,
다른 누군가의 걸음으로 대신 이어가는 것.

.

세월이 흐른다.
29살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크고 넓은 무엇을 가지지 못한 사람.


하지만 가볍게 웃고, 쉽게 감동하고,
문득 한 약속을 지키고 싶어지는 사람.


회사 계약이 끝나던 날.
나는 말했다.
“엄마, 우리 떠나자.”

늦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여행을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기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비행기는 김해에서 출발했다.
베이징을 지나 런던에 도착했다.


런던의 공기는 축축했고,
파리의 햇살은 무심했고,
바르셀로나의 음식은 조금 짰다.
마드리드의 저녁은 한없이 느렸다.


그 모든 것을 엄마와 함께 겪었다.
카메라 속에는 서로를 향해 웃고 있는 우리가 있었다.

나는 여전히 잘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여행 동안만큼은
누군가의 꿈을 이뤄주는 사람이었다.

.

사람들이 묻는다.
“얼마나 들었어요?”


나는 말한다.
“천만 원. 딱 천만 원이요.”


.

.


분류 I 금액 (2인 기준)


항공권 : 1,599,400원

숙소 : 2,278,480원

국경/지역 이동 : 912,519원

유심/입장권등 : 2,069,918원

생활비 : 3,000,000원


총합계 : 9,860,317원


.

.

.

이건 수치다.
하지만 내게는 증명이다.
엄마와의 시간은 계산되지 않지만,
내가 한 약속을 지켰다는, 조용한 영수증이다.

.

언젠가 내 딸이
내게 같은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엄마는 못 간 여행이 있어?”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는 한 사람의 바람이었고,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걷고 있는 사람이니까.




.

.

.


다음 글에서 엄마와 떠난 유럽 자유여행의

“엄마와 유럽 첫날밤”을 소개합니다.

17박 18일의 하루하루를 어떻게 채웠는지 궁금하다면, 다음 글에서 만나요.







ChatGPT Image 2025년 7월 12일 오후 10_32_08.png





“바람이 되어서, 네 여행길에 기분 좋은 바람으로 불어줄게.”


지금 그 바람 속을 걷고 있다.
나는. 그리고 엄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