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단상(斷想)

by 서옹

어느새 달력 뒷장이 남지 않은,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시간의 강에 내던져진 터라 지나간 삶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아쉬워서 그런지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재작년과 작년 연말에는 그러지 못했다. 은퇴 첫해인 재작년은 난생처음 맞닥뜨린 은퇴라는 사건의 무게에 눌려 버렸고, 작년에는 은퇴가 몰고 온 신세계가 온통 나를 흔들어 놓아 여력이 없어서였다. 다행히 올해는 정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 나대로의 삶을 살아내는 방책으로 글쓰기를 선택해 실천한 덕에 여유가 생겨서다. 체험을 자양분으로 하는 글쓰기가 ‘자기 돌아봄’을 이끄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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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새 달력 뒷장이 남지 않은, 한 해의 끝자락에 다다랐다. 시간의 강에 내던져진 터라 지난 삶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 아쉬워서 그런지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 정승주


올 한해 내 삶을 나타내는 키워드를 꼽으라면 단연 은퇴 생활과 글쓰기다. 몇 개월 남짓 동안 여기저기 쓴 글들의 제목을 나열해 보니 은퇴 후 삶의 흔적과 고민이 맨얼굴을 드러낸다.


<가사 초보자의 은퇴 생활 적응기(適應記)>, <명함 없는 은퇴 생활>, <은퇴 후 맞닥뜨린 '갈등', 그리고 해법>, <나는 왜 은퇴해서도 일하려 할까>, <조금 덜 가지는 만큼 생기는 삶의 여유와 기쁨들>, <은퇴,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 등은 은퇴 생활에 적응하려는 나의 노력과 해법에 관한 글들이다. 쓰면서 마음을 정리했고 삶에 대한 자세를 다잡았다.


은퇴 생활 적응과 더불어 나를 고민케 한 건 보다 근본적이고 실존적 문제인,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노년의 문턱에 서 있는 나로서는 삶의 마무리 문제를 피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쓴 <노년(老年) 마주하기>, <뇌와 입 사이, 단어가 춤춘다>, <삶이 힘들지만>, <삶의 덧없음과 무의미함이 고맙다>, <걱정에서 조금 비켜서면 얻는 것들>, <아내에게 꼼짝 못하며 사는 이유>, <30년 걸린 아내와의 단둘이 여행>, <사랑은 자유다>, <나답게 사는 것 외에 방법이 있을까> 등의 글들은 삶의 마지막 무대에 임하는 나의 태도이자 다짐이었다.


한 달 전쯤인가 아파트 창을 통해 밖을 보다 공원 숲 단풍풍경이 눈에 들어왔었다. 예년과 다르게 예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번 가을에 비가 많아서 그런가 싶었다. 아쉬운 마음에 어느 해인가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단풍이 너무 예뻐 찍어 둔 사진이 생각나 찾아보았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단풍을 만들어 내는 나무들은 변함없는데 올해와는 아주 다른 경치였다. 인생도 비슷하다. 우리가 사는 삶이 매년 똑같은 것 같아도 의지나 태도에서의 조그마한 변화만으로도 인생은 제법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별, 해고, 암 투병과 같이 예고 없는 큰일이 일어나면 인생이 얼마나 바뀔지 가늠되지 않는다. 그와 비교되지는 않겠지만 은퇴는 예고된 것임에도 삶을 놀랄 만큼 바꾼다는 걸 나는 경험했다. 아파트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조금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이사해서 더는 이전 풍경을 볼 수 없게 된 것처럼.


삶이 바뀌면 힘들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살아온 관성대로 살아가려 하는지 모르겠다. 법륜 스님이 사람은 소신이라는 각자의 안경으로 세상을 본다고 한 것도 수긍이 된다. 관성대로 사는 삶도 못지않게 힘들기는 매한가진데 말이다.


“사람들은 모두 제 나름대로 소신이라고 믿는 각자의 편견으로 세상을 봅니다. 그리고 그 편견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끊임없이 분별하면서 번뇌를 일으키고 괴로워합니다.” (법륜 지음, <법륜 스님의 금강경 강의>, 정토출판, 2012, 190쪽)


하지만 세계의 강물이 끊임없이 변하며 흐르는데 바뀌지 않는 인생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강물에 끝없이 대꾸해야 하는 것이 살아가는 자의 숙명인데 어쩌겠는가. 물결 따라 흘러가려면 물결을 이해하고 스스로 헤엄쳐야 한다. 자기만의 헤엄을,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 김민웅은 존재에 걸맞은 삶을 제대로 살려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기 돌아봄(省察)’의 태도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자신은 스스로를 태어나게 함으로써 드디어 자기 자신이 되는 법이다. 자기 자신의 부모는 정작 자기 자신이다. 그건 자신을 낳고 길러준 부모를 부정하는 논리가 아니라, 그 부모는 사실 내 안에 살아계심을 깨우치는 데서 시작하는 신비로움이다.” (김민웅 지음, <자유인의 풍경>, 한길사, 2007, 28쪽)


나이를 먹을수록 살아온 삶의 관성은 커져만 간다. 회갑을 훌쩍 넘긴 내가 관성의 힘을 이겨 낼 수 있을까 싶다. 어쩌면 황하 물이 맑아지는 걸 기대하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올 한해 나는 다른 방향으로 첫 발자국을 뗐다. 은퇴가 펼쳐 논 낯선 세계를 이해하려 했고, 글쓰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겨우 한 걸음이지만 그것이 나에게 의미로 다가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새해에도 그렇게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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