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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마 Nov 10. 2023

어느 하루는 모르는 것들의 집합



  몇 시에 나올지 모르겠다고 하니 섬에서 나오는 마지막 배는 다섯 시 십 오분이라고 했다. 뭍에서 섬까지는 삼십 분이 걸렸다. 갑판 위에선 서울말을 쓰는 남자 셋의 사진 몇 장을 찍어 줬다. 사실 서울말인지는 모르겠고 허경환 같은 여기 사투리는 아니었다. 그 갑판 위에 이십 대는 그들과 나 혼자 뿐이었다. 몇 살쯤 됐을까 했는데 아마 많아봐야 나보다 세네 살쯤 더 되어 보였다. 사실 이것도 틀린 추측일 것이다. 나는 사람 얼굴을 보고 나이 가늠을 할 줄 모른다. 그러다 곧 배에서 내려 섬 안내판을 봤다. 탈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의 배를 탄 거라 섬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작은 섬인 줄 알았더니 아주 큰 섬이었다.


  섬 둘레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혼자 적적하니 걷고 있었는데 어느샌가 내 뒤에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 뒤에서 아줌마들이 재잘거린다. 오늘이 일곱물이니 여덟 물이니 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물이 빠지는 때를 말하는 건가 싶었다. 어쩐지 바닷물이 많이 빠져 있었다. 내일이 정월대보름이라는데 그것도 한몫하는 걸까 싶었다. 아줌마의 일행인 것 같은 아저씨가,

”너거가 몇 물인가 말하면 그게 머인가나 아나“

라고 말하길래 나는 속으로

‘모릅니다 ‘ 대답했다.


  나는 선봉처럼 척척 나아가다 어떤 문을 만났는데 현판에 한자가 세 글자 적혀있었다. 뭔가 싶어서 한참을 그 앞에 서서 바라봤는데 그렇게 해봤자 뜻을 알 수 없었다. 주위에 그 흔한 안내판도 하나 없었다. 걸음이 빨라 뒷사람들이랑 거리가 꽤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올 때까지 내가 한참을 쳐다봐서인지 아까 그 아저씨가 한자를 읽어주었다.

“아 이게 대첩문이라 쓰여있네•••.”

  그 뒤로도 아저씨는 내가 모르는 한자를 마주하고 올려다보는 족족 뒤에서 큰 목소리로 읽어줬다. 아저씨가 마지막으로 읽어준 한자는 충무사였는데 거기에 이순신 영정이 있었다. 초입부터 향 냄새가 바람을 타고 진하게 나서 나도 괜히 하나 붙여놓고 왔다. 물론 향에 불 붙이고 몇 번 휘저어 꽂는 방법 같은 건 모르니까 내 맘대로 했다.


  다 보고 내려오는 길엔 내 앞에 키가 같은 두 사람이 있었다. 남자 쪽은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데 차려입어서인지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60대 같았고 옆의 여자는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물론 이것도 틀린 추측일 것이다. 뒤에서 조용히 따라가고 있는데 남자가 휴대폰에 대고 말했다

  “외국에서 놀러 와도 여기는 못 와볼 거다. 외진 곳이거든”


  옆에 사람이 있는데 왜 휴대폰에 대고 말하나 싶었는데 곧바로 번역이 되어 베트남어인지 태국어인지 외국어가  아주 크게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나를 의식했는지 몇 번이나 뒤로 흘끔 쳐다봤다. 그래서 바로 에어팟을 꼈다. 여자는 나를 몇 번 보고 나서 갑자기 옆의 남자가 받아주건 말건 눈에 띄게 팔짱을 더 세게 끼고 어깨에 얼굴을 기대면서 애정 표현을 했다. 그러면서 계속 뒤로 나를 쳐다봤다. 난 그게 어떤 마음에서 온 것일지 알 수 없었다. 여길 더 둘러봤자 길을 잃을 것 같아 항구로 돌아왔고 곧이어 오는 배를 타고 섬을 나왔다.


  모르는 가게에 가서 모르는 사람이 만들어 주는 초밥과 맥주를 먹으면서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다. 그 뒤엔 모르는 카페에 들어가 뭔지도 모르는 원두를 골라 무슨 맛인지 모른 채로 커피를 마셨다. 이게 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마셔서인지 바리스타가 커피 맛이 어떠냐고 물어왔다. 문득 시간을 보니 돌아가야 할 때였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몰랐다.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택시를 불러 모르는 밤길을 한참 달렸다. 휴대폰으로는 2시간 30분, 역무원은 2시간, 기사 아저씨는 1시간 30분 걸린다는 버스를 탔다. 몇 시간이 걸리는지도 모르고 탄 버스에서 아무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가 아는 게 없었다.



2023.02.07. 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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