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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Nov 13. 2022

모두의 영웅들

― 하나의 목소리와 들리지 않는 수많은 목소리

또래 중에는 세계를 누비던 '바람의 딸'의 책을 읽고 그녀의 키즈를 자처하며 국제구호와 개발 분야에 발 들인 이들이 꽤 있었다. 나도 내 미래까지 연결짓지는 못했지만 그 책을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이야기에 힘이 있었던 모양이다. 누군가는 요즘 왜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지 의아해한다. 단순하고 예상 가능하게 답하자면 그런 사람들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눈앞의 일을 부지런히 감당해가는 것만으로도 바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해받을 만큼만 홍보하거나 자가 복제적 캠페인을 되풀이하도록 다른 이들의 손에 카메라와 마이크를 넘겨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신건강에는 오은영 박사님, 반려견 훈련에는 강형욱 전문가님을 떠올리듯이, 이 분야에서도 토론회, 간담회, 교육 등 어디든 초대받고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는 동료 사이에서 신임받는 이들도 있지만, 일부는 기관의 후광이나 전략적 네트워킹의 결과인 경우도 없지 않다. 정말 듣고 싶고 들려져야 할 이야기는 묻혀져 있는 반면, ‘장’의 이름을 가지고 별도의 ‘방’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이들의 공허한 이야기가 정처 없이 퍼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주니어와 시니어 사이 중간 실무자들은 실망을 넘어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현장성이 최고냐 하면 그건 또 다른 방식으로 막연히 권력을 부여하는 셈이다. 어느 날 한 외부 논의에서 나는 참가자들에게 질문을 했고 누군가 서둘러 답했다. 


“아마 현장을 다녀오시면 아실 거예요.” 


속으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분은 논의 중간에 들어와 내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서로에 대한 이해 없이 현장 경험을 언급한 것은 내가 그보다 그을림 없고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약간의 정적 후 그가 ‘아차’하는 얼굴로 사과 비슷한 말을 했으니 혼자만의 오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티 지진, 네팔 지진, 필리핀 홍수, 로힝자 사태 등 수 많은 위기 상황에서 기관이 했던 대응을 본인의 훈장처럼 간직하고 있는 이들은 현장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이해시키려 하기보다 그저 영웅담을 들려주고 싶어 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했다. 끊임없는 숙고와 뼈아픈 교훈을 거친 이들의 실패담이 차라리 더 재미있거나 유용했다. 개인의 말과 행동 하나가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안다는 건 그만큼 적절한 대응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항상 그렇다고 할 순 없다. 단순히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의 괴리 때문만이 아니라, 결국 이 일이 어떤 한 사람의 기지나 능력으로만 가능한 게 아닌 주변의 수많은 지원과 자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조직 안에서, 더 넓게는 국제개발 분야 안에서, 다른 산업에서처럼 능력주의와 성과주의를 마주할 때면 서늘했다. 우리는 외부 기관의 기금을 획득하면, 거대한 프로젝트를 맡으면, 자문가 역할이나 전문가 직책을 맡으면, 무언가 달라진 것처럼, 혹은 달라질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단 한 사람의 공로로 치하되기 까지 주변 동료들의 지원은 쉽게 가려졌다. 제도가 우리를 그렇게 만든 것일 수도,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우리 스스로 증폭시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제개발 일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기대하고 바랐던 지향점의 원형은 아니었던 것 같다.          



멘토를 찾기 어려운 시대라고 한다. 우리는 같은 경험을 하지 않은 어른들에게 의지하기보다 같은 문제로 씨름하는 동료들에게 더 자주 어깨를 빌렸다. 어쩌면 그보다는 오롯이 자기 안으로 파고 들어가 막다른 곳에서 길을 잃거나 자기만의 성벽을 쌓는데 몰두하기도 했다. 개인의 능력과 성공이 더 중요해진 이 시대에 우리는 멘토를 찾기 어려운 게 아니라 멘토를 찾을 능력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자신이 한 일을 더 이상 증명해내지 않아도 충분히 귀 기울여질 수 있는 공간, 독점과 독백이 아닌 양쪽이 배우고 나누고 시간. 이런 시공간이라면 서로가 서로에게 멘토가 되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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