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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Nov 30. 2022

나와 동료들

― 함께 머물렀던 공간과 서로를 빚어간 시간

그의 모니터에 ‘지원서’가 부끄럼 없이 띄워져 있었다. 푸른 배경 증명사진 속 눈빛은 언제 적인지 모를 총기가 빛을 발했다. 그가 최종적으로 제출 버튼을 눌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는 몇 해 더 자기 자리를 잘 지켰고, 이내 팀장이 되면서 역할 몰입의 연장기한을 늘린 듯했다.



20대 초중반에 같은 마음으로 일을 시작해 3~40대로 넘어가는 중에 각자의 이유로 새로운 여정을 떠난 동료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허례허식 없이 진심을 다했던 이들이었기에 아쉬운 마음이 컸다. 같이 일을 익혀가던 P를 필두로 동료 세 명이 국내 복지로 직군을 전환했다. 자발적 의사로 임지를 옮긴 이들은 모두 애초에 사회복지사였다. 외국인으로 말과 글에 의존해 행정 관료적인 일을 조율하기보다, 직접 눈으로 보고 발을 내디뎌 손에 닿는 보람을 원했었다. 그들은 어쩌면 붙잡기 어려운 대의보다 일찌감치 자기 주변에 놓인 관계들을 잘 돌볼 줄 아는 이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봉사활동이나 단기계약직을 거치며 자기 갈 길을 먼저 알아본 친구들도 있었다. 돈은 적게 주면서 일은 많이 시킨다고 언제나 솔직했던 H는 사기업으로, 친밀하지 않은 상사들에게 원하지 않는 호감과 비호감의 대상이 되었지만 쿨한 능력자였던 I는 공공기관으로, U는 신학을 더 공부한 끝에 종교기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론적으로 가장 내세울 것 없다고 생각한 나만 우두커니 남아있었다.  



우리의 퇴사(또는 탈 업계) 결정은 때로 가볍게 여겨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해받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뒤에서 어떤 염려와 자성의 말이 있었는지 몰라도 ‘국제 일하는 친구들은 역마살이 있으니까’, ‘요새 사람들은 평생직장이 없으니까’, ‘더 좋은 기회 찾아서 가는 거니까’ 같은 말이 앞에서 자주 들렸다. 퇴사가 사람 사이를 영영 끊어 놓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함을 마냥 축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바쁜 와중에 참석하지 않으면 오해받기에 십상인 송별회는 의례적으로 열렸고, 모두가 속마음을 숨긴 채 한껏 끌어올린 예의로 피상적인 덕담과 추억을 나누었다.



일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되고 싶은 모습이 있었고, 그런 모습이 형상화된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선망했던 이들은 결혼 후 외국에 머물거나 육아에 전념하면서 점점 더 같은 공간에서 보기 어렵게 되었다. 혹은 이미 보장된 자리를 떠나 새로운 땅을 일구는 모험을 시작하면서 소식이 뜸해져 갔다. 여행할 때면 무릎이 찌릿할 때까지 걸어서라도 가고 싶은 곳에 이르고 마는 나는 가끔 진로 여정 중에 나침반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내비게이션도 본체가 움직여야 기어코 말하기 시작한다는 말을 믿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걸음을 반복했다.



멋있는 어른을 탐색하던 인턴 시절 옆 팀 팀장님과 밥을 먹으며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시냐 물었다. 그분은 머리 아니면 명치 어딘가에 단단히 자리 잡은 신념이 시킨 듯 평소보다 냉랭한 말투로 답했다. 


‘꿈 같은 거 없이 사는 사람도 있어요.’ 


질문한 나는 멋쩍었고 그가 멋없다고 생각했다. 한참 뒤에야 그건 자신 앞에 놓인 삶을 온 힘 다해 버티는 사람들을 인지하는, 현실적이고 겸손하기까지 한 답변이라 생각했다. 허황된 이상을 제시하기보다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게 삶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멋있는 어른은 저절로 되지 않는데 나와 함께 일한 수많은 선임들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무수히 평가하기 바빴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 상태로 남아있을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채.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어디쯤 와있는지 모르면서 그저 맡은 몫을 해나가는 동료들이 있다. 어느 순간 소명을 잃고 기계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느낄 때도 이내 숨을 고르고 다시 불확실함을 견디면서. 잠시 한눈을 팔았다가도 자기만의 골짜기를 지나 결국 더 넓은 길목에서 다시 반갑게 재회하기를 기다리면서. 웃었다가 울었다가 결국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지금 여기’에 발을 단단히 딛고 ‘또 다른 어딘가’로의 가능성을 믿는, 여전히 다른 것이 가능하다고 상상할 수 있는, 우리로 같이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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