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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라이언 Jun 15. 2024

보고 싶은 데이터만 보는 '확증 편향'에 대하여

회사 생활에서의 독('毒', Poison) 1편

회사 생활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을 꼽는다면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다. 우리말샘에 따르면 확증 편향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뜻한다. 회사 생활에서 확증 편향은 언제 발생할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확증 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내가 일하는 사업기획팀의 핵심 업무는 문서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논리적이고 물 흐르듯 흐르는 스토리라인'의 기획서를 작성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생각, 주장을 제대로 펼칠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객관적인 데이터'다. 시장 데이터, 고객 데이터, 제품 데이터로부터 기획이 시작되어야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결론을 먼저 내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찾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즉, 결론을 먼저 내리고 그 결론에 다다르기 위한 근거 데이터를 찾아 맞추는 식이다.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도 과연 객관적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내는 경우는 보통 3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 상위 직급자 또는 클라이언트가 이미 답을 정한 경우다. "이 방향으로 갈 거야. 그렇게 준비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면 그에 맞춰 기획을 해야 한다. 두 번째 이유는 해당 분야에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정보를 알고 있고, 충분히 그 분야를 공부했다면 데이터에서 출발해도 원하는 결론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 갈 수 있다. 잘 모르니까 내가 내린 답에 필요한 근거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이유는 결론부터 시작할 때 쉽고 빠르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리할 때,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보고 메뉴를 정하는 것보다 메뉴를 먼저 정하고 냉장고에서 재료를 찾는 것이 더 수월한 것처럼.


결론 먼저 짓고 시작하는 기획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는 방식은 과학이 답을 찾아가는 방식과 같다. 잘만 하면 오히려 똑똑하고 효율적일 수 있다. 다만, 정말 조심해야 한다. 가설을 강화하는 근거 자료를 계속 찾다 보면 그것이 정답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근거 없이 내린 결론이 사실이었다는 생각에 짜릿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내 결론이 정답이고, 그것을 부정하는 데이터에는 거부감이 들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확증 편향'의 무서움이다.


확증 편향은 일상 곳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집을 사려는 사람은 앞으로 집값이 떨어질 거라는 뉴스와 영상을 찾아보고, 집을 팔려는 사람은 집값이 오를 거라는 뉴스와 영상만 보며 그렇게 믿는다. 정치 뉴스도 마찬가지다. 내가 믿는 팩트만 진짜 팩트다. 그리고 알고리즘은 우리의 확증 편향을 더욱 강화시킨다.


이렇게 위험한 '확증 편향'의 독(毒, Poison)에 중독되지 않고 나를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유일한 해결책은 결론을 언제든 뒤집을 수 있는 용기인 것 같다. 나의 주장에 반하는 데이터를 마주했을 때, 거부하지 않고 진지하게 내 주장을 다시 들여다보는 태도.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내 아이디어가 '틀렸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두 손들고 항복할 수 있는 대인배의 마인드. 상위 직급자가 정한 방향이 아니라는 데이터를 확보했다면 당당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틀린 것을 정답이라고 믿거나, 옳지 않은 데이터로 일을 추진하는 것은 진정한 기획자라고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한스 로슬링의 책, <팩트풀니스(Factfulness)>에서 확증 편향과 관련된 문장을 소개한다.

특정 생각에 늘 찬성하거나 늘 반대한다면 그 관점에 맞지 않는 정보를 볼 수 없다. 현실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런 식의 접근법은 대개 좋지 않다.
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생각에 허점은 없는지 꾸준히 점검해 보라. 내 전문성의 한계를 늘 의식하라.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새로운 정보, 다른 분야의 새로운 정보에 호기심을 가져라. 그리고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하고만 이야기하거나, 내 생각과 일치하는 사례만 수집하기보다 내게 반박하는 사람이나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나와 다른 그들의 생각을 오히려 세상을 이해하는 훌륭한 자원으로 생각하라. 나는 세상을 오해한 적이 많다. 현실에 맞서다 보면 내 실수를 깨닫기도 하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런 사람을 이해하려 노력하면서 내 실수를 깨달을 때가 많다.


* 커버 이미지: Davide Baraldi님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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