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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한 May 28. 2024

결국 보스호라스 01


늦은 밤. 잠은 오지 않고, 생각도 멈춘 것 같은 밤에 슬리퍼를 신고 옥상으로 가는 계단을 밟았다. 옥상 문을 열고 선선한 바람을 맞았다. 옥상을 빙글빙글 돌다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밝고도 선명다. 그래서 그런지 소원을 빌고 싶어졌다. 어제도 마음속으로 빌었던 그 소원을.


"있잖아. 하루코가 보스호라스에 가고 싶어 했잖아. 나도 하루코를 따라 보스호라스에 갈 거야. 가고 싶어. 가게 해줘."


혼잣말을 하듯 달을 보며 중얼거렸다. 달은 들었을까? 그러면 들어주려나.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고 있는 내가 유치해서. 달이 소원을 들어준다면, 소원 따위 세상에 없겠지 그런 마음이 들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옥상을 돌아다녔다. 아무도 없는 옥상을 아무도 없을 시간에 나 혼자서. 세상에 혼자 있는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우울은 마음 깊은 곳으로 가라앉은 밤이었다.


새벽 5시. 어렴풋하게 밝아진 하늘이 나를 깨웠다. 침대 위에서 몇 번이고 뒤척이다 눈을 슬며시 뜨고 레이를 찾았다.


"레이야. 누나 일어났어."


 꾸웅 우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안도를 느끼며 안정을 찾았다. 침대 밖으로 손을 뻗어 레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누나 오늘 아침도 맞이했어. 칭찬해 줘."


아무런 답도 없이 머리를 치켜들며 내 손을 쳐냈다. 레이다운 행동에 웃으며 일어났다. 냉장고를 열고 채소를 씻고 물기를 털어내어 레이에게 가져다주었다. 열렬한 반응으로 채소를 맞이하는 레이는 나라는 존재 까맣게 잊고 내 부름에도 신경 쓰지 않고 먹는데 열중했다. 그런 레이가 좋아서 먹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입 주변이 초록색으로 물드는 것도 모르고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한참을 먹더니 내 주변을 어슬렁 거리며 으르릉 거린다. 내가 싫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내가 반가운 건지 저리 가라는 건지 헷갈린다.


그런 레이를 두고 욕실로 향했다. 씻고 나와서 레이 사료와 건초를 챙겨주고 물을 갈아주었다. 삐익 거리며 불만을 토해내기에 간식과 좋아하는 영양제도 챙겨주고는 집을 나섰다. 골목길을 빠져나오는 걸음이 가벼웠다. 하늘은 더없이 맑았다.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찡그리다 손으로 가려주었다.

 

그렇게 걷는데 며칠 전 한이에게 들었던 말이 내 귓가에 다시 들려왔다.


"언제까지 우울증 핑계로 죽고 싶다고 말할 건데?"


한이는 그랬다. 가끔 나에게 그렇게 묻고는 했다. 핑계라는 말이 거슬리기는 했지만, 결국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좀 그만하면 안 돼? 병원에 다닌 지 몇 년째야?"


덧붙인 말에 서글퍼졌다. 우울은 마음먹는다고 뚝딱 잘라낼 수 있는 게 아닌데 그 걸 모르는 한은 내게 그렇게 말하고는 했다. 사실 나도 한의 말처럼 생각할 때도 있다. 이제 그만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보통의 우울로 나아가 평범한 삶을 살고 싶다고.


한의 말은 어느 날은 상처가 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의지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며칠 전 한은 내게 의지를 심어주었다. 나아가야겠다는 의지를. 우울 따위에 지고는 우울에 잠식당한 채 아무런 의지도 없이 의욕조차도 없이 누워서 한탄만 하는 삶이 지겨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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