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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ador Feb 07. 2024

장사가 잘 안 되는 집

혼술을 위한 첫 번째 조건

 ‘늑골이 시릴 정도로 쓸쓸한 날은 혼자 술을 마십니다…혼자 마시는 술맛도 환경이 어느 정도 맞아야 완결성을 갖습니다. 먼저 주변이 너무 번잡하지 않아야 합니다. 또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야 하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조건을 따지다 보면 결국 ‘장사가 잘 안되는 집’을 찾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호준 <자작나무 숲으로 간 당신에게>



 

 혼술을 좋아하다 보면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가게 된다. 그 술집의 분위기나 음식의 맛이나 질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눈치 안 보고 조용히 술 한 병을 비울 수 있는 곳이면 됐다. 그런 술집을 설령 찾았더라도 장사가 안돼 얼마 안 가 문을 닫기 마련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물끄러미 문닫힌 가게를 쳐다보곤 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또 다른 술집을 기웃거렸다.


 그러다 찾은 식당은 시장 안에 있었다. 저녁이 되면 텅텅 비어버리는 동네 작은 시장 안에서 수육과 국밥을 파는 식당이었다. 2인 테이블이 있었고, 대부분 빈자리가 있었기에 눈치 안 보고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을 마실 수 있었다. 단골들도 꽤 많아 망할 것 같지 않은 식당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꾸준히 갔다. 언제나 혼자였다. 자주 가다 보니 사장님과도 안면이 트여 사람 없는 날엔 옆 테이블에 앉아 ‘왜 맨날 혼자 오느냐’, ‘이곳이 고향이냐’ 등의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이어폰을 빼며 답하는 나를 보곤 더 이상의 관심은 쏟지 않았다. 그리고, 대체로 저녁시간은 손님들이 꽤 있어 서로 인사만 나눌 뿐이었다.

 

 집에서 10분 거리의 이 식당을 찾아가는 길은 시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야 한다. 저녁 시간대의 시장은 정리가 한창이다. 마지막 남은 채소를 떨이하는 아주머니를 지나, 내가 지나가길 기다려  물세례를 퍼붓는 횟집 아저씨를 피해, 늦은 저녁 장을 보는 아주머니의 걸음 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식당이다.

가게 밖에서 국물에 수육을 토렴 하는 사장님과 인사를 나누며, 자리가 있는 지를 확인한다. 습기가 찬 안경을 벗고 늘 앉던 자리에 않는다. 일하시는 아주머니는 시키지도 않은 소주와 기본 찬을 내오시고, 그렇게 소주 한두 잔을 하다 보면 국밥이 나온다. 끊기지 않은 사람들의 대화를 이어폰으로 차단하고 좋아하는 영화나 유튜브를 보며 비워가는 소주병에 맞춰 국밥을 먹는다.

 

 ‘장사가 잘 안 되는 집’을 이제 못 가는 이유는 정이 든 사장님의 문닫힌 가게를 더 이상 보기 싫은 것도 있지만, 아무도 찾지도 찾아가지도 않는 나이 들어가는 인생을 보는 것 같아서이기도 하다.


 이젠 혼술밥이 조금은 늘어 꾸준히 손님이 있어 망하지 않을 가게를 찾아가 자리를 잡는 여유도 생겼다. 나와 같이 나이 먹어갈 오래오래 가고 싶은 식당 하나쯤 곁에 두고 싶은 욕심을 부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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