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nador Jan 31. 2024

겨울

계절은 냄새로 온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한없이 맑지만 베일 듯이 날카로운 공기가 폐를 찌른다. 목도리와 장갑을 챙기지 않았음을 깨닫지만 19층까지의 엘리베이터 왕복 시간이 내게는 없다. 9시간 운전의 결과다. 집에 오자마자 간단히 저녁을 먹고 쓰러져 잤지만 알람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평소보다 30분 늦게 일어났다. 옷장을 열 여유도 없이 대충 씻고 벗어놓았던 옷을 입고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원래는 1박 2일 출장이었다. 계획은 그랬지만 당일 일정으로 바뀐 건 변경할 수 없는 회의가 다음날 잡힌 덕분이었다. 예정과 엇나가는 상황이 싫었다. 출장을 가지 말까 고민도 했지만 납품 전 마지막 검사에 안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결정된 왕복 9시간의 운전은 늦잠이라는 후유증을 남겼다.


 차에 오르니 어제 휴게실에서 출출해서 샀던 군밤 냄새가 실내의 찬 기운에 섞여 있다. 겨울은 이렇게 온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군밤과 군고구마 냄새로. 회사 가는 길 포장마차 한편 구석에 뜨겁게 데워진 어묵 국물로 온다. 해장이 간절한 날엔 가끔 김밥 한 줄을 사고 어묵 국물을 종이컵에 담아 마시곤 했다. 오늘은 하얀 김으로 가득 찬 포장마차를 지나가며 애꿎은 시계만 노려볼 뿐이다.


 마시지 못한 어묵 국물은 근무시간 내내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술모임이 급하게 만들어졌다. 메뉴는 주관자의 의지대로 어묵이었고, 장거리 운전의 여파로 2차는 없음을 선포하였다. 단골 술집의 창문에 가득한 습기를 열고 들어가 소주에 어묵탕과 수육을 시켜놓고 한층 여유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이제 갓 6시 30분을 넘겼는데 열 개 정도의 테이블엔 빈자리를 찾아볼 수 없다. 인공 조미료가 덜 들어간 어묵탕에 대리 만족을 하며 소주병을 비운다. 회식이 아닌 몇몇의 모임에서의 회사원들 이야기야 뻔하지만, 뻔한 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9시를 넘어간다. 모임은 이미 그전 술자리들에서 안주가 되었던 단골 주제들에 대한 토론으로 넘어갔고, 다들 기억하지 못하는지 처음 하는 얘기처럼 다들 집중해 있다. 따뜻한 곳에서 마신 술이 노곤해진 몸의 피로를 껴안고 급하게 올라온다. 2차를 가자는 직원들의 권유를 뿌리치고 대리운전을 부르고 밖으로 향한다. 밤이 차다.


 대리운전을 기다리며 시동을 걸고 조수석에 타다 발밑에서 어제 먹은 군밤 봉투를 발견한다. 이젠 희미해진 냄새.


 미처 치우지 못한 봉투에 겨울이 담겨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 혼술의 역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