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벗어나야 할
코로나 때문이었다. 내 혼술의 역사는.
그리고, 그 기간이 3년이나 이어질 줄 전혀 몰랐다.
코로나로 인한 집합 금지 조치로 인해 회사 생활도 무미건조해지고, 언제 또 확진자가 나와 체육시설 자제 공문이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헬스장 등록도 썩 내키지 않던 시절이었다. 거기에다 식당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그 가벼운 일탈에 의해 확진이 될 경우 취해지던 방역과 동선 확인 등은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아무리 본인이 떳떳하더라도 불안하게 했다. 사무실이나 회의에 참석했던 인원뿐만 아니라 출퇴근 버스나 식당에서 동선이 겹친 모든 사람이 코로나 검사를 해야 했다.
그 암울했던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퇴근 후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즐기는 반주뿐이었다. 술은 먹고 싶으나 같이 마실 사람은 없는 코로나로 인한 강제된 도시의 고독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혼술밖에. 퇴근 후 포장이나 밀키트로 안주를 준비하고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면서 소주 한잔 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9시까지 2시간의 행복이었다. 그렇게 술 마시는 날이 하루 이틀 늘어나면서 일 년에 술을 입에 안 댄 날이 손에 꼽을 정도가 되고 만 것이다.
이제 코로나로 인한 위기 상황은 종식되었지만, 이 혼술의 습관에서 난 아직까지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혼술의 즐거움에 이미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회식이 있어 일행들과 술을 마셔도 코로나 전처럼 사람들과 술 마시는 속도를 맞추며, 같이 취해가던 기쁨이 없어졌다. 술병을 옆에 두고 남들이 마시든 안 마시든 나만의 속도에 맞춰 술을 비우고 술을 따르는 일이 잦아졌으며, 적당량이 되면 몸이 술을 거부하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했다. 2차가 힘들어졌으며, 술을 과하게 마신 날은 다음날 일하기가 힘들었다. 아, 물론 이건 나이 탓도 있겠다. 40대 말에 시작한 코로나가 50대에 끝이 났기에 내 몸도 늙었으리라.
가뿐히 이겨내던 숙취로 몇 번 고생을 하고 나자 술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출근하며 기필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가냘픈 각오는 퇴근 시간과 함께 사뿐히 부스러져 버리는 것이다. 결국 집에 오는 길에 안주를 고르고 함께할 영화를 찾아 복사하여 붙여 넣기라도 하듯 어제와 같은 시간의 되돌이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벗어나지 못한 혼술의 역사 속에서 나는 이제 정신을 차리려고 한다. 그전에 비해 너무 많이 떨어진 체력과 내장 지방으로 가득 찬 E.T 같은 내 몸을 보며 이젠 걱정을 너머 혐오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 비루한 인간. 결국 술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 찾은 의미가 외모다.
하여튼 내가 보기에도 싫은 몸이지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나서서 배가 나왔다고 지적질하는 인간들의 말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고, 건강 좀 생각하라는 가족들의 충고도 이젠 귓가로 흘려보내기가 쉽지 않다.
중독을 치유하는 건 또 다른 중독이라 했던가. 술을 벗어나기 위해 수영장 등록도 하고, 사놓고 읽지 않았던 책도 읽고, 글쓰기도 하는 요즘이다. 또 다른 중독을 위하여 조금은 천천히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