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그 이전의 자국

by 자하

엄마는 요즘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하고 있다. 바로 다음 작품인 수건이다!

엄마는 요즘 흰 수건에 무언가를 자수로 놓고 있다. 처음엔 국화인 줄 알았고, 그다음엔 봉오리 진 모란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수건 위에 놓인 그 자수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연꽃이었다. 진흙 속에서도 피어나는 연꽃. 검은색과 흰색의 완벽한 대비.

과하지 않는 수수함의 아름다움. 그것이 엄마가 피어낸 수건 위의 가치였다.

연꽃은 진흙을 딛고 자란다. 더럽혀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도 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인지 엄마는 연꽃이 되기 전의 단계도 수를 놓았다. 구멍이 뽕뽕 뚫린 그 속을 거멓게 채우며 색을 덧입혀간다. 어쩌면 이 수건의 가치는 물을 닦는 것 그 이상의 것이다. 보고 있기만 해도 아까운 그런 부드러움과 강함의 산물.

이 수건 위에 자수를 놓기 위해선 먼저 거친 수건을 판판한 형태로 만들어줘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나의 수고가 들어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기말고사를 시작한 지 3일 후 엄마는 갑작스럽게 뽀송한 수건들 사이에 숨겨져 있는 축축한 것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나의 발을 빌려갔다. 정확히는 나의 무게가 필요했을 것이다. 넓은 두 발로 신나게 밟다 보면 이내 축축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씩 충동을 참지 못하고 몰래 겉의 수건을 걷어보았을 때 마주치게 되는 그 완벽한 수건의 형태는 잊을 수 없다. 이 수건이 엄마의 손에 들어가자 변하게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 수건에는 꽃이 피지 않았다.

그 대신, 작은 구멍들이 가만히 놓여 있었다.

검은 실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마치 속을 보여주는 듯한 자국들.

엄마는 이걸 연꽃이 되기 전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사실 나는 피어난 후라고도 생각한다)

아직 피어나기 전, 무언가를 품고 있지만 아직 드러내지 않은 상태.

불완전하고 어딘가 비어 있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고 더 진실한 시기의 모양.


흰 수건 위, 군더더기 하나 없는 이 검은 자수는 눈에 띄지 않지만, 자꾸만 눈길이 가는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처음엔 “뭐지?” 싶었지만, 보면 볼수록 자꾸 생각하게 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건 꽃일까, 씨앗일까, 아니면 그저 구멍일까?


엄마의 이 수건은 당신에게 묻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곁에 머무른다.

피어나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도 충분하다고.

때론 아무것도 자라지 않아도 된다고.

세상에 이미 너무 많은 완성된 것들 속에서,

우리에게 이 미완의 수건 하나쯤은 괜찮지 않을까?


손을 닦아도 좋고, 책상 위에 걸쳐도 좋고,

그냥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

어딘가의 공백을 닮은, 아주 작은 연꽃 이전의 자국.

엄마가 세상에 선보이는 그녀만의 작은 발자국, 얼른 완성되기를 나는 언제나 기다린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어요.

제 시험은 언제 치렀냐는 듯이 금방 훌훌 털고 일어났어요.

생각보다 작은 것 중에 아주 작은 것이었더라고요.

다음을 기약하며 보내주기로 마음먹었어요. 다들 파이팅!!)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