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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뿌듯 May 14. 2024

뺄례네 집 손녀딸 4

나를 들여다보는 일

 할머니가 나에게 제일 많이 한 말은,


 “승질이 지랄 맞은 것이 꼭 지 애비를 닮았어”


  생각해 보면 어려운 환경이 마음 여린 아빠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그 지랄 맞음이 아빠를 바르게 살도록 돌봐준 것 같다.


  아빠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나와버렸다. 중퇴였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아이에게 사회는 얼마나 냉혹했을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몸 쓰는 일밖에 없었으리라.


  이 세상에서 아빠를 나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같다. 바로 우리 고모 김연숙이다. 고모는 고생을 참 많이 했다. 사고로 한쪽 눈까지 실명했다. 자신의 안위보다 동생이 최우선인 사람. 아빠의 얘기를 들려줄 때마다 고모의 눈가엔 항상 샘이 솟았다.


  아빠랑 둘이서 손잡고 먹을 것 얻으러 다니며 동생을 엄마처럼 돌보려고 노력한 참 고운 사람. 자신에게도 없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마음을 쓴 사람. 늘 나에게 미안해했던 나의 고모.


 고모가 힘을 썼다. 돈을 열심히 모아 아빠의 모교인 태산고등학교에 찾아가 돈을 주고 졸업장을 사 왔다. 그때는 이런 게 됐었나 보다. 동생이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 겪는 설움을 가슴 아파한 고모였다.


  내가 앨범에서 본 아빠는 흥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곳저곳 여행하기를 좋아하며 기타를 둘러메고 음악을 사랑한 아빠. 글도 곧잘 썼다고 들었는데.. 뭐 본인 얘기를 하면 못한 게 늘 없다고 하니... 쩝...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우리 아빠는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고, 한평생 배가 나와 본 적 없는 남자. 자기 관리가 철저한 멋진 남자다.    


 이제 아빠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아빠는 군 복무를 시작했다. 군대에서 아빠는 말뚝 박으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나도 여군을 꿈꿨을 정도로 군대에 대한 로망이 있다. 중학생 때 즈음 사관학교에서 여자를 뽑는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여자 군인의 삶은 어떨까?"


라고 어렴풋이 생각을 했다.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는데,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아빠가 보일 때가 있다. 아빠가 보고 싶을 때 나는 나를 본다.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빠를 들여다보는 것이기 때문에..


  군대에서의 잔류 권유를 만류하고 아빠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간다. 과정은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 창원에 있었던 대한중공업에 생산직으로 들어간 것이다. 나는 안 봐도 안다. 그곳에서 아빠가 어떻게 일했을지. 100만 원을 주면 400만 원어치 일을 했을 테니, 그때 그곳에서 아빠의 진가를 본 어른이 계셨던 것 같다. 아빠를 생산직에서 관리직으로 승진시켜 주신 것이다. 아빠는 이제 시간적 여유와 체력적 여유가 생겼다.


 아빠는 그 시점에 공부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주경야독.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해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했다. 고등학교 중퇴 정도의 실력이었던 아빠는 그 시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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