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올림픽 in 재수학원
재수학원에서 우리 여자들은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남자보다 밥을 적게 주는 일도, 반 대항 축구경기에서 응원만을 담당하는 일도.
우리가 남자아이들처럼 운동능력이 뛰어나 밤에 2층 높이에서 논으로 뛰어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스무 살 혈기 넘치는 여자아이들의 탈출에는 다 방법이 있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건 남자지만, 그 남자를 지배하는 건 여자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우리에게 금지된 행동을 체계적이고 계획적이며 성실하게 준비했다.
우리는 대범하게도 대낮에 우리의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당시 내가 준비했던 수능은 500점 만점으로 사탐이나 과탐을 4개 선택해야 했다. 오전에는 국영수 위주로 수업을 하고, 오후 시간에는 자신이 선택한 과목으로 이동해서 수업을 들었다. 이때에는 담임 선생님들의 관심이 느슨해져 출석체크가 완벽히 되지 않았다. 이동교실 자리에 없는 아이들은 아파서 교실에서 쉬고 있다고 말하면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사실 이때를 노린 것은 나의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경기도 광주시 산속에 있는, 보이는 것이라고는 논과 강이 전부인 학원이었기 때문에 이동수단으로써의 택시가 꼭 필요했다. 택시의 최대 인원은 4명. 아저씨에게 약간의 애교(?)를 부리면 최대 5명까지 가능했다. 우리 반의 여자는 10명이라서 탈출하려면 5명을 선발해야 했다. 노는 것에 우리만큼 진심인 재수생이 있을까? 스무 살 때 우리는 나름 합리적이었다. 탈출 배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탈출하는데 필요하는 요소는 이러하다. 중장거리를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 달리는 심폐 지구력, 선생님과 CCTV를 피해 순간순간 이동해야 하는 순발력, 개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민첩성,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점프력,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탈출을 감행하는 강인한 멘탈과 성공을 의심하지 않는 자아 효능감 등등... 종목을 정하고 그에 맞게 순위를 매겨 최종 순위 5위까지만 탈출을 할 수 있었다.
탈출 한번 하기 위해 이렇게 까지 체계적일 일인가! 일탈에 거의 목숨을 걸었다. 이렇게 공부를 했다면, 아마 서울대 갔겠지? 이 순간 할머니의 심한 쌍욕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50미터 달리기, 점프력 테스트, 낮은 포복과 같은 항목으로 우리는 공정하게 순위를 정했다.
최종 멤버는 이러하다. 김뿌듯, 이연, 허은형, 김민정, 장영아.
드디어 대낮 탈출의 서막이 열렸다. 그날이 온 것이다. 월요일이나 금요일은 감시가 삼엄했기 때문에 수요일로 디데이를 정했다. 휴대폰을 몰래 가져온 아이에게 미리 말해 콜택시를 불러놨었다. 점심을 편안하게 먹고 각자의 사탐교실로 이동하는 척하면서 운동장으로 향했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책도 가지고 나왔다.
곳곳에 CCTV가 있었으나 내가 미리 사각지대를 파악해 두어 아이들을 인도했다. 나무 기둥에 몸을 은폐엄폐 하면서!! 마지막 관문 개구멍은 뾰족뾰족한 날카로운 철사로 막혀 있었는데, 내가 친구들이 낮은 포폭으로 갈 정도로 살짝 들어주면 통과가 가능했다. 문제는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나였다. 하지만, 나는 한 때 꿈이 여군이었지 않나! 그 정도 몸에 스크래치 생기는 건 나에게 우스운 일이었다.
다섯 명이 모두 개구멍으로 나온 후 옆 가든으로 불러둔 택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최대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옷에 묻은 흙과 나뭇잎을 떼어내고 택시에 올랐다. 나는 기사님 옆자리에 탔는데, 아뿔싸. 한 가지 간과한 것이 떠올랐다. 바로 학원 정문에 있는 경비 아저씨다. 택시를 타면 그 앞을 필연적으로 지나갈 수밖에 없는데!! 시나리오에 없던 상황에 나는 몇 초 동안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순발력 하나 끝내준다. 뒷자리에 탄 네 명에게
“얘들아 우리 그냥 택시 타고 지나가면 경비 아저씨가 볼 거야. 하나, 둘, 셋 하면 모두 몸을 숙여 알겠지!!!”
“헉, 알겠어.”
“자 지나간다! 하나, 둘, 셋 숙여!”
일사불란하게 우리는 몸을 숙였다. 역시 탈출을 위해 올림픽까지 진행한 보람이 있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탈출에 성공한 환희로 가득 찼다. 경기도 광주 시내로 나가서 노래방으로 갔다.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를 떼창 했다.
‘저 먼바다 끝엔 뭐가 있을까, 다른 무언가 세상과는 먼 얘기.
구름 위로 올라가면 보일까 천사와 나팔 부는 아이들!
숲 속 어디엔가 귀를 대보면 오직 내게만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
꿈을 꾸는 듯이 날아가볼까 저기 높은 곳 아무도 없는 세계
그렇게도 많던 질문과 풀리지 못한 나의 수많은 얘기가
돌아보고 서면 언제부턴가 나도 몰래 잊고 있던 나만의 비밀
왜 이래 나 이제 커버린 걸까, 먼가 잃어버린 기억 (바보 흉내를 내면서 ㅋㅋㅋㅋ)
이젠 나의 그 작은 소망과 꿈을 잃지 않기를 저 하늘 속에 속삭일래’
그리고는 김밥천국, 배스킨라빈스, 오락실을 거쳐 남자아이들이 부탁한 담배 미션까지 완료 후 저녁시간에 맞춰 학원으로 돌아갔다. 올 때의 경험을 살려 돌아가는 길은 더 쉬웠다. 택시에서 내려 낮은 포복으로 개구멍을 통과한 후 위풍당당하게 교실로 돌아갔다. 마치 비틀스 앨범 재킷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진의 한 장면처럼!
달콤했던 하루의 일탈. 우리는 완전 범죄에 성공했다. 나는 아직도 이때의 스릴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이 탈출멤버와 아직도 끈끈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탈출을 함께 한 전우들과의 한잔에는 딱히 다른 안주가 필요하지 않다.
* 오랜만에 글을 다시 연재합니다. 글 쓰는 게 업이 아닌데, 어느 순간 의무감으로 쓰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해 버렸거든요. 글을 쓰는 것은 누구보다도 저를 치유하는 행위인데, 어느새 스트레스받는 일로 전락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과감히 중단하고, 기다렸습니다. 제가 다시 글을 쓰고 싶어질 때를요. 영영 안 올 줄 알았는데, 그날이 다시 왔습니다. 다시 뺄례네 집 손녀딸 2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뿌듯이를 지켜봐 주세요. 오늘도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단의 라이킷은 저에게 1 뿌듯이 됩니다!
@병가 중에 있습니다! 회복해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