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나의 설움
주차를 하고 이마트에 들어갔지만 푸드코트가 보이지 않았다.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아이 손을 잡고 두리번거리다가 직원 분을 찾아 식당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 여기 푸드코트가 어디 있어요?
- 아, 여기는 푸드코트가 없어요. 대신 3층에 가면 노브랜드 버거를 팔아요.
- 네?
오후 내내 쫄쫄 굶은 데다 추운 겨울 하루 종일 우리를 따라다니던 아이들에게 먹고 싶은 거 다 시켜주고 싶어서 들어간 대형 마트였다. 하지만 그 큰 마트에서 당장 먹을 수 있는 게 햄버거 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미안했지만 일단 햄버거를 주문했다.
가족들과 자리를 잡고 앉아서 햄버거를 먹는데 우리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이제 보증금 받을 때나 연락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이 시간에 갑자기 전화가 와서 의아했지만 일단 전화를 받았다.
- 예, 사모님. 여기 **부동산인데요, 내일 11시에 집에 계세요?
- 네, 그런데요?
- 오전에 집주인이 새 세입자랑 전세 계약을 하러 와요. 그래서 오는 김에 집 상태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요.
- 아... 그런데 저희도 내일 오전에 집을 보러 가야 해서 더 빨리 오셨으면 좋겠어요. 10시쯤 오시면 될 것 같네요.
- 네 알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햄버거를 입에 물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주위를 의식할 겨를도 없이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내 앞에서 프렌치프라이를 먹던 남편이 당황해서 나를 달래고, 나를 보고 놀란 아이들은 밥 안 먹어도 된다고, 배 안 고프다고 연신 말했다. 딸이 매장 데스크로 가서 휴지를 한 줌 가져왔다.
- 난 너희들한테 해줄 수 있는 거 다 해주고 싶어. 그러려고 진짜 열심히 모았거든. 그런데 이제 돈은 있는데 이제 내가 갈 곳이 없어. 그게 너무 슬퍼.
다시 전세로 살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는 남편에게도 이야기했다.
- 남편, 이제까지 우리가 같이 가서 본 집에 전세로 들어가면 나 다시 고생할 거야. 사람들이 집 보러 온다고 연락 오면 그때마다 쓸고 닦느라 손가락 마디마디가 너무 아파. 상태 별로인 집에 들어와서 내가 이만큼 아끼고 깨끗이 살아 줬으면 집주인이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부동산에서 들어서 알 거 아냐. 내가 집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그런데 또 뭘 점검하러 오냐고. 계약한 기간까지는 내 집이라고. 지난주까지 한 달간 집 보여 준다고 그 고생을 하고, 이제야 좀 편하게 지내나 했는데, 지금 당장 집에 가서 나 또 정리해야 돼? 청소해야 돼? 다들 나한테 왜 이래?
눈물이 줄줄 흐르는 와중에 하고 싶은 말도 끊임없이 나왔다.
- 나도 집 살 돈은 있어. 전세금도 제때 안 돌려주는 사람이 집 상태를 확인하러 온다고? 그게 너무 짜증 나. 당신도 봤잖아. 이제까지 본 집에 비하면 우리 집은 모델하우스야. 맞잖아? 당신도 그래. 이렇게 계속 남의 집 빛내고 광내며 사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아?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해? 당신도, 집주인도 진짜 나한테 너무 한 거야.
눈물과 그간의 설움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이마트 3층 오픈된 햄버거 가게 앞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 이번 방학때 아이들이 제주도 가고 싶다고 했는데, 집 보여주느라 아무 데도 못 갔어. 그리고 우리 애들 이사 갈 때마다 친구들 매번 바뀌고, 항상 자기들 둘이 노는거 보면 내가 너무 미안해. 동네 친구들이랑 학원 같이 다니고, 주말에 학교 친구들이랑 나가 놀고, 같이 공부하는 그 평범한게 왜 그렇게 어려운 거야?... 이게 뭐가 좋다고 다시 전세를 살자는 거야?
- 수리도 안되고 제대로 청소도 안된 집에 내 돈 들여 들어가 살면서 뭐 하나 고장 나면 고칠 때마다 비굴하게 말하고, 이사 갈 때마다 사생활 까이고, 애들 학교 친구, 동네 친구들 계속 바뀌고... 뭐 하러 돈 버는데? 왜 돈 모으는데? 우리 애들 동네 친구 만들어주는 게 왜 이렇게 어렵냐고...
손에 들고 먹던 햄버거가 목에 걸렸다. 울면서 먹기를 반복하면서도 나는 콜라와 함께 내 몫의 햄버거를 꾸역꾸역 다 먹었다. 나와 달리 남편과 아이들은 주문한 햄버거를 절반도 먹지 못했다. 목이 멨지만 하루 종일 주린배를 채워주는 햄버거는 맛있었다. 나도 반나절 내내 집 보러 다니면서 물 한 모금 못 마신 상태였다. 남편이 짐을 챙기며 말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나가자.
마트를 나갔다. 근처에 아들이 좋아하는 우동집이 있었지만 아들은 한사코 먹기를 거부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울음을 그치고 스마트폰만 쳐다봤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사과했다.
-얘들아 미안해, 엄마가 다 해주고 싶은데, 이게 내 맘대로 안 돼. 엄마가 동네 친구도 만들어 줄 수 있고, 배우고 싶은 것도 다 시켜줄 수 있는데 이게 마음처럼 잘 안되네.
아이들이 나를 되려 위로해 줬다. 집 가까이 오니 마음이 조금 추슬러진다. 집 근처 편의점에 차를 세우고 아이들에게 먹고 싶은 거 다 고르라고 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오늘 오후에 제대로 먹은 게 없었고 나도 아이들 밥 챙기고 설거지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딸은 컵 떡볶이, 아들은 컵우동과 메추리알, 남편은 생크림 빵과 전주비빔 삼각김밥을 골랐다. 계산하기 전에 남편이 물었다.
-당신은?
-나? 나는 그냥 집에 있는 거 먹을래.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컵라면에 부을 물을 끓였다. 따뜻하고 편안한 집. 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익숙하고 편한 곳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풀린다. 아이들의 늦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나도 내가 먹을거리를 준비했다. 일주일 전, 아이들과 시켜 먹고 남은 치킨 반 마리. 에어 프라이어에 치킨을 돌리고 고민 끝에 냉장고에서 카스를 꺼냈다. 늦은 저녁 식사 준비를 마치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맥주를 식탁에 내려놓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 이거 지난 12월 5일에 산 거야. 당신 새 회사에 합격했던 날, 그날 편의점에서 당신이랑 같이 가서 산 거야. 그런데 그날 안 먹었어. 기다렸지. 당신이 입사하는 날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당신이 첫 출근 했던 날 그때 전 회사에서 퇴사 처리가 안 돼서 힘들었잖아. 그래서 그때도 못 먹었고 다시 미뤘지. 당신이 정식으로 출근하는 날 먹기로. 그런데 막상 새 직장으로 출근이 확정되었을 때 당신이 다시 원래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고 해서 그때도 못 먹었어. 그래서 다시 다짐했지. 당신 첫 월급 받는 날 먹을 거라고... 그렇게 미루고 미뤘어... 그런데 아직 당신이 첫 월급 받으려면 보름이나 남았는데, 오늘은 안 먹을 수가 없어. 그래서 꺼냈어. 이거 당신 새 회사에서 첫 월급 받는 날 먹으려고 한 건데...
시간이 지나 딱딱해진 치킨은 에어프라이 때문에 그나마 굳어있던 기름까지 빠져서 뻑뻑했다. 하지만 그 뻑뻑함이 차가운 맥주와 묘하게 잘 맞았다. 남편과 맥주를 나눠 먹었다.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는 남편이 먼저 같이 먹자고 권했다. 남편과 내가 건배를 하니 아이들도 자기가 가진 컵을 하나씩 들고 건배를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다시 시작하자.
-그래 자기 전에 우리가 가볼 동네 매물 한 번 더 찾아보고...
그렇게 우리는 다음날 오전에 다시 부동산에 가보기로 했다. 아까 그 잘못 찾아간 D부동산 사장님이 우리와 헤어지며 말했었다.
- 여기 3층 34평 매물 주인이 전화를 안 받네? 전화를 잘 받는 사람인데 오늘은 어째 연락이 안 되네요. 내일 꼭 와요. 출발할 때 연락해 약속 잡아 놓을 테니까. 알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