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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Aug 29. 2024

엄마의 멍을 닮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나는 2.7kg으로 태어났다. 엄마는 원래 말랐는데, 나를 임신하고도 충분히 먹지 못해서 더 말랐다고 했다. 어릴 때 동네에 동갑내기 친구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중에 제일 작았다. 40명이 넘는 유치원에서도 가장 작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나를 많이 놀렸고 나는 자주 울었다. 그래도 가기 싫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울면서 집에 올 줄 알면서도 매일 유치원에 갔다.


   남편은 어릴 때 눈이 동그랗고 몸이 작아서 동네 아이들이 만만하게 다. 아이들이 괴롭힐 때면 형과 누나를 부르곤 했다. 남편의 어릴 때 별명은 땅딸이였다.

  중학교 가서도 마찬가지 중학교에는 형과 누나는 없었다. 남편을 롭히는 생이 있었는데 남편은 한번 미친척 싸웠다고 . 이 작은 녀석이 한번 눈 돌아가면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 놈이라는 것을 안 아이들은 이후로 아무도 남편을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자 남편의 별명은 땅딸이가 아니라 넙치로 바뀌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난임 병원에 다녔다. 인공수정에 실패하고 냉동 이식과 시험관을 시작하면서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 난포를 키우는 주사를 맞으면 주사 부위가 멍이 들고 살이 뭉쳤다. 반년쯤 지나자 주사도 시술 실패도 익숙해졌다. 그러다 의사도 결과를 알 수 없다는 피검사 수치에 임신했다.


   결혼 5년 만에 힘들게 찾아온 아이예전의 나보다, 어릴 때 남편보다 컸다. 낮잠을 잘 자지 않아 힘들었지만 친정 엄마는 그게 나와 닮은 점이라고 했다. 그리고 닮은 점이 하나 더 있었다. 키가 작은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도 초등학생이 되면 자연스레 자랄 줄 알았다. 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7 영유아 검진에서 아이가 더디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된 의사 선생님이 대학병원을 권유했다.


  대학병원에 가서 검사받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이가 주사를 무서워했다. 병원바닥에 누워 난리를 피워서 채혈을 하는데만 30분이 걸렸다. 검사 결과 이상은 없었지만 최종적으로 입원 검사를 하기로 했다.       

   입원하던 날, 아이의 기초체온이 높아서 검사 직전 퇴원했다. 바로 한 달 뒤예약을 했지만 남편이 코로나에 걸려 가지 못했다.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잊고 지냈다. 일 년 뒤 아이가 16개월 어린 동생과 키가 비슷해지자 주변에서 검사를 권유했다. 유전자 검사를 는데 결과는 정상.


  10살이 되자 생일 지나기 전에 병원을 가 보라는 지인의 권유로 성장 클리닉을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은 그간의 검사데이터를 확인하고 이것저것을 묻더니 이렇게 말했다.

" 얘는 병원에서 검사를 해도 이상이 없을 거예요. 원래 그냥 작은 아이예요. 지금은 뼈나이가 10개월 어린데 뼈나이를 따라잡기 전에 치료를 받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릴 때 나도 남편도 작았다. 하지만 키와 상관없이 자신의 일을 하며 밥벌이하며 산다. 그래서 성장치료가 꼭 필요한 일인가 오래 고민했다. 병원에 가기 전에 아이에게 나의 생각을 솔직히 말했다. 그사이 아이는 주사보다 작은 키가 더 고민이라고 했다. 아이돌이 되려면 더 커야 한다고.


   아이는 이제 주사 바늘을 보며 울지 않는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냉장고에서 주사를 꺼내 식탁 위에 둔다. 매일 밤, 아이의 멍든 엉덩이를 보면 내가 너를 낳기 위해 주사를 맞았던 때가 생각난다. 짧은 순간 마음이 뭉치고 욱신거린다. 엄마는 어릴 때 작아서 많이 울었는데, 이럴 때 보면 네가 그때 나보다 더 의젓해 보인다. 내일을 기대하며 불편을 참아 주는 네가 고맙다. 나의 멍을 닮아 미안하다. 사랑한다 우리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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