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경강 하류의 충적평야는 식량 자원 생산과 수송의 거점이 되었다
들어가기에 앞서
익산의 경우, 20세기까지 '이리'라는 명칭 또한 흔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본 글에서도 '익산'과 '이리'라는 표현이 혼재되어 있으니 참고하며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익산역과 철도관사촌
여지껏 익산에 가 본 것은 네 번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 방문을 앞두고 이 글의 투고를 시작했다. 첫 번째는 곡성으로 가는 전라선 열차를 갈아타러 익산역에 내려 잠시 익산 땅을 밟은 것. 두 번째부터 네 번째는 모두 익산에 사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것. 아마 다섯 번째 방문 후 이 글이 완성될 듯하다. 익산을 여러 차례 방문하며 본 공간 유산들을 글로 우려내고자 한다.
이번 글은 '이용상, 임병국 (2022) - 지역사회 발전과 철도의 역할'과 함께한다. 제목 그대로 지역사회 발전에 철도가 어떻게 작용하였는지, 즉 철도와 지역사회 간의 상호작용을 다룬 책이다. '장소가 어디에 위치하는가'를 넘어서고자 하는 '공간기록'에서 다루기에 참으로 유익한 자료가 아닐까 싶다.
익산이야말로 대전과 함께 철도 교통의 큰 수혜를 입은 곳 중 하나이다. 현재의 익산역은 1990년대까지 이리역으로 불렸기에 '이리'라는 이름으로 표기한다. 1912년 대전에서 내륙 수운의 중심인 강경까지 이어져 있던 철도를 항구 도시인 군산으로 연장하면서 이리역이 개업하였다. 이를 필두로 전주와 김제 방향으로 여타 지방을 잇는 철도 노선들이 순차적으로 개통하였다. 군산, 강경, 전주, 김제. 호남평야 사방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결절지(結節地), 즉 철도 노선의 교차점이 된 이리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특히 호남평야 각지에서 생산된 식량 자원들은 이리에서 분기하는 군산 방면 철도를 거쳐 군산항을 통해 반출되었기에 군산과의 상호작용이 돋보인다.
이러한 규모 있는 철도역 근방에는 반드시 부대시설로 철도원들이 지넀을 철도관사촌이 있기 마련이다. 네 번째 방문 때 짬을 내 이곳을 잠시 둘러보았다. 관사의 원형이 어떻게,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철도관사길'이라는 도로명이 이곳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호남선의 여객 취급량 1위, 화물 취급량 2위를 자랑하던 호남평야의 수위급 철도역, 어쩌면 지금까지도 그 위상을 이어가고 있을 익산역. 곧게 뻗은 도로 저 멀리에서도 보이는 저 웅장한 역사(驛舍)는 건물만 큰 것이 아니라 그 위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근대 도시 '이리' 엿보기
그런 이리의 근대를 엿볼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더 있었는데, 익산근대역사관이라는 곳이다. 다섯 번째 방문에서 역전 시가지를 걸으며 이곳을 둘러보았는데, 본래 계획에는 없던 곳이었다. 입구에서의 호객에 나는 혹시 입장료가 있냐고 물었다. 입장료가 있다고 해서 되돌아갔다면 서로 껄끄러웠겠지만, 다행히 입장료가 없단다. 방문에는 동반한 이가 있었는데, 또한 들어가기를 권하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익산근대역사관은 본래 일제강점기 '삼산의원'이라는 이름의 병원으로 쓰이던 건물. 그 자체로도 병원을 비롯해 극장, 은행, 백화점, 기업 등이 밀집했던 근대 도시 이리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이리의 명실상부 최대 번화가였던 '영정통'. 그곳에는 식민 통치에 앞장선 대표적 기업인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은행의 이리 지점, 그 시절 '핫 플레이스' 였을 당본백화점과 '이리좌'라는 이름의 극장까지, 다양한 기업, 금융, 상업 시설들이 즐비했다.
역사관에서는 근대도시 이리의 발전사부터, 일대 농업의 특징, 그리고 수탈이라는 이면까지 볼 수 있었다. 근대 도시 '이리'의 모습을 엿보기에 유익한 장이었다. 답사 중 종종 찾아오곤 하는 '계획에 없던 방문'. 이것이 직접 발로 걷는 답사의 의미 아닐까. 답사를 함으로써 어느 하나라도 더 '건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익옥수리조합과 관개수로, 그리고 대장농장
"지미(地味)가 뛰어나다. 즉 토지가 비옥하다."
일제강점기 한 일본인이 당시 이리에 대해 위와 같이 묘사하였다. 이리가 위치한 곳은 만경강 하류, 흘러오는 물에 의해 퇴적된 충적평야(沖積平野)이다. 호남 각지의 식량자원들이 모이기도 했을 익산이지만 익산 자체도 비옥한 농토를 지닌 곡창 지대인 것이다. 이러한 식량 자원의 생산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하여, 이리 일대에는 관개 수로가 건설되었다.
네 번째 방문 때의 일이었다. 동산동 일대를 걸으며 본, 잘 정비된 자연 하천이라며 넘겼던 사진 속의 그것은 바로 관개 수로였다. 이는 동산동을 비롯한 익산 시가지의 남쪽 경계선을 이루고 있었다.
이 수로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다섯 번째 익산 방문을 준비하며 둘러본 1930년대 지도에서였다. 지도를 보던 중 눈에 띈 '관개지', '수로'라는 글자들. 그 앞에는 하나같이 '익옥수리조합'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익옥수리조합은 1920년 만경강 유역의 두 수리조합을 통합하여 설립되었다. 이 조합은 1920년대 일제의 산미증식계획과 맞물려 농업 생산성을 최대화하기 위한 관개수로의 건설을 주도하였다.
건설된 관개수로는 현재 고산에서 이리를 지나 옥구까지 총연장 약 80킬로미터에 달하였다. 앞서 소개했던 익산근대역사관에서 위와 같은 자료 또한 볼 수 있었다.
익옥수리조합의 사무소는 익산 시내에 남아있다. 재개발 지구에 둘러싸였음에도 등록문화재이기에 철거는 면했다. 그러나 부지 자체가 공사 현장에 둘러싸여 방문 당시에는 아쉽게도 접근할 수 없었다.
이리 일원 10여개의 일본인 소유 농장들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두 번째 방문 당시 동익산 정류장에서 111번 좌석버스에 몸을 실어 춘포역으로 향했다. 이 춘포역의 과거 명칭은 '대장역'으로, 역 설치 당시 이곳에 위치하였던 일본인 소유 농장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석탄동 우각호, 혹은 용강제
이러한 수리(水利) 사업은 구불구불 흐르는 강을 곧게 만드는 직강 공사로도 이어졌다. 1938년까지 진행된 만경강 개수공사. 이로 인해 나타난 지형들을 통해 직강 공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 석탄동에 위치한 '용강제'라는 이름의 '우각호'가 그것이다.
우각호란 '소 뿔 모양의 호수'라는 뜻으로 본래 하천이었으나 유로의 변동과 절단으로 하천과 분리된 호수를 일컫는다.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하천, 즉 곡류 하천에서, 공격 사면이라 불리는 곡류의 바깥쪽에서는 침식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침식이 이루어질수록 두 곡류부는 가까워지며, 끝내 두 곡류부는 이어진다. 이어진 곡류부를 통해 새로운 유로가 형성되고 본래 하천이었던 부분은 유로와 격리되어 호수로 남는다. 본디 우각호의 자연적 형성 과정은 위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용강제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곡류 하천을 직선화하기 위해 제방을 축조하였고, 축조된 제방이 유로를 절단시켰다. 유로와 격리된 부분이 호수로 남아 우각호가 되었다. 결과는 동일하지만 원인과 과정이 다르다. 특히 이렇게 인공적으로 형성된 우각호는 근현대에 들어 각종 치수(治水)공사가 행해지며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섯 번째 방문, 익산시내와 춘포 사이, '토다리'라는 이름의 정류장에 내려 이십여 분을 걸었다. 전날 내린 비로 고인 흙탕물, 하지만 오늘은 맑음. 화창함에 만경강의 지류에서 낚시를 즐기러 나온 이도 보았다. 드넓은 평야 위로 기차가, 제방에 다다르니 그 위로 자전거도 질주했다.
사실 나는 이곳에 오기를 제일 기대하였다. 그동안 이론으로만 접했던 지형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전율이 돋았다. 우각호 앞 의자에 앉았다. 유로로부터 격리된 이곳에는 더 이상 물이 찰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메마르고 말 것이고 아마도 알게 모르게 이 순간에도 그러할 것이다. 나중에는 과거에 물이 있던 흔적만이 남은 '구하도'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슬프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전혀 아쉬워할 것 없으리라. 나는 그저 섭리에 의해 변화하는 모습의 한 장을 담아낼 뿐이다. 둘을 갈라놓은 제방 위에서, 만경강도 바라보고, 만경강이었던 곳도 바라보고.
마치며
농업에 유리한 조건을 두루 갖춘 익산. 그런 익산은 근대에 들어 교통의 발달로 식량 자원의 생산뿐만 아니라 수송의 거점으로써도 기능하게 되었는데, 수위급 철도역인 익산역과 그에 딸린 철도관사에서 이를 엿볼 수 있었다. 그에 더하여 다양한 상업 시설이 밀집한 근대 '이리'의 중심지, 농업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진행된 다양한 수리(水利) 혹은 치수(治水) 사업의 장 또한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뜻깊었던 것은 '계획에 없던 방문'. 직접 발로 걷는 데에는 여러 의미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섯 번째 방문 후,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익산 방문에 대한 감상을 적는다. 기차는 수원역을 출발해 영등포역으로 향하고 있다.
공간기록
살아가는 공간에서 가치를 찾고, 그 유산들을 기록해나갑니다.
글 철사
사진 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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