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어정쩡한 자동화의 함정, K자 성장의 늪에 빠진 한국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AI를 잘 활용하고
가장 많은 로봇을 돌리고 있지만,
가장 비효율적으로 성장하는
역설의 나라에 살고 있다.
2025년과 2026년의 교차점에서, 세계의 시선은 대한민국으로 쏠렸다. 엔비디아(NVIDIA)의 젠슨 황은 한국을 향해 "메모리와 제조 역량이 결합된 진정한 AI의 수도"라며 찬사를 보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어 차세대 칩 생태계에 합류했고, 국내 대기업들은 앞다투어 데이터센터 구축에 조 단위의 투자를 집행했다.
이러한 '자동화 열풍'은 거대 기업의 담장을 넘어 평범한 개인의 일상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생성형 AI 유료 구독률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공장에서는 로봇 팔이 춤을 추고, 거리의 식당에는 키오스크와 서빙 로봇이 깔려 있으며, 사무실의 직장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챗GPT와 같은 최신 AI 도구를 결제해 사용하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 통계 기준 '로봇 밀도 세계 1위'이자 'AI 구독률 세계 2위'. 명실상부한 '자동화 공화국(Automation Republic)'의 탄생이다.
표면적으로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미래'에 도착해 있는 듯하다. 하드웨어(로봇)와 소프트웨어(AI) 양쪽에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인 '얼리어답터'다.
하지만 경제학의 정밀한 계기판이 가리키는 숫자는 이 화려한 기술적 쇼케이스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우리가 그토록 많은 로봇을 공장에 채워 넣고, 매달 AI 구독료를 지불했던 지난 10년(2015-2024) 동안, 경제의 진짜 효율성을 나타내는 '총요소생산성(TFP)'의 성장 기여도는 1990년대 2.3%포인트에서 최근 0.7%포인트 수준으로 비참하게 추락했다.
경제학 교과서대로라면, '자본 심화(Capital Deepening)'와 신기술 도입이 이루어질수록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지금 기이한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투입된 자본과 기술은 산출을 늘리지 못하고, 기업의 이익률은 제자리걸음이며, 노동자들의 몫인 노동소득분배율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한국형 생산성 역설(Korean Productivity Paradox)'이라 부른다. 세계가 주목하는 'AI 수도'이자 가장 부지런한 '자동화 공화국'에서, 왜 우리의 경제 엔진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가? 그 막대한 투자와 구독료는 도대체 어디로 증발했는가? 이 책은 그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책은 그 원인을 기업과 개인의 '불순한 기술 도입 동기'와 그로 인한 '어정쩡한 자동화(So-so Automation)'의 함정에서 찾는다.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가 로봇과 AI를 도입한 주된 동력은 '새로운 가치 창출'이라는 슘페터적 혁신이 아니라, '비용 회피(Cost Avoidance)'와 '노동 대체'라는 방어적 본능이었다.
우리는 먼저 한국 노동시장에 닥친 거시적 지각변동을 직시해야 한다. 소득 수준 향상과 급격한 인구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한국 노동시장은 임금이 올라도 사람을 구할 수 없는 '구조적 구인난(Labor Scarcity)'에 봉착했다. 마치 경제학의 '후방굴절 노동공급 곡선'처럼, 노동의 공급 자체가 줄어드는 구간에 진입한 것이다.
이러한 인력난과 인건비 상승은 경영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 이들은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사람을 구하기 힘들고, 관리가 어렵고,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기계와 AI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것은 기술적 투자가 아니라 노동 시장의 압력을 피하기 위한 '도피성 자동화(Regulatory Arbitrage)'에 가깝다.
문제는 애쓰모글루(Acemoglu)와 레스트레포(Restrepo)가 경고했듯, 비용 절감만을 목적으로 도입된 기술은 필연적으로 '어정쩡한 자동화'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AI가 이메일을 대신 쓰고 로봇이 커피를 대신 나르며 인간의 시간을 줄여주었을지는 모르지만, 전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지는 못하는 상태. 수학적으로 증명하건대, 기술이 노동 생산성을 압도하지 못한 채 단지 임금 격차 때문에 감행된 자동화의 초과 이익은 '0'에 수렴한다. 우리는 혁신의 사다리를 타고 미래로 올라간 것이 아니라, '수익성 없는 해고'의 늪에 빠진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기 위해서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경제학적 렌즈'부터 갈아끼워야 한다. 우리는 21세기의 AI 경제를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1950년대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가 고안한 '신고전학파 성장 모형'의 낡은 지도에 의존하고 있다.
솔로우의 세계는 '수확 체감(Diminishing Returns)'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이 세계에서 자본(K)과 노동(L)은 서로 대체 가능한 부품일 뿐이며, 결정적으로 '경합적(Rivalrous)'이다. 내가 기계를 쓰면 당신은 쓸 수 없고, 공장에 로봇을 채울수록 효율은 점차 떨어진다. 이 관점에서 보면 노동을 줄이고 기계를 늘리는 한국 기업들의 선택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시선을 돌려 지금 세계 경제의 정점에 서 있는 빅테크 기업들을 보라. 그들은 자본을 투입할수록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하는 '수확 체증(Increasing Returns)'의 구간을 질주하고 있다. 그 비밀은 폴 로머(Paul Romer)가 설파한 '내생적 성장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에 있다.
이들 선도 기업은 단순한 시장 참여자가 아니라,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와 데이터를 보유한 '준국가적 기업(Quasi-Sovereign Entities)'으로 진화했다. 그들에게 자본은 닳아 없어지는 기계가 아니라, 쓰면 쓸수록 가치가 커지는 '아이디어'와 '코드',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람(H)'이다. 내가 쓴다고 해서 당신이 못 쓰는 것이 아닌 이 '지식 자본'은 한계비용 '0'의 성장을 가능케 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대다수가 낡은 기계에 의존해 '수확 체감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동안, 소수의 혁신 기업만이 '수확 체증의 섬'으로 올라타는 'K자형 균열'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모두 '섬'으로 올라가지 못하는가? 혹자는 글로벌 빅테크들이 이미 ESG 보고서 등을 통해 투명하게 공시하고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이미 가진 자'들이 아니라 '새로 시작하는 자'들에게 있다. 우리가 혁신을 측정하는 수단, '회계 장부'가 고장 났기 때문에 이들의 가치는 제대로 측정받지 못하고 있다.
첫째, 20세기의 회계가 21세기의 두뇌를 '비용'으로 취급한다. 현재의 국제회계기준(IFRS)은 수많은 개정을 거치고 있음에도 여전히 유형 자산 중심주의와 엄격한 보수주의에 갇혀 있다. 기업이 1,000억 원을 들여 공장을 지으면 그것은 '자산(Asset)'이 되어 기업 가치를 높인다. 하지만 똑같은 돈을 들여 AI 엔지니어를 채용하고, 직원들을 재교육하고, 독자적인 알고리즘을 개발하면? 이 막대한 투자는 미래를 위한 자산이 아니라, 즉시 털어버려야 할 '비용(Expense)'으로 처리되어 영업이익을 깎아먹는다.
이 기이한 회계 규칙은 임기 3년의 전문경영인(CEO)에게 '대리인 문제'를 유발한다. "사람에게 투자하면 당장의 실적이 나빠져 해고당하지만, 기계를 사면 자산이 늘어나 자리를 보전한다." 별도의 ESG 보고서가 있다 한들, 경영자의 성과급과 연임 여부는 여전히 재무제표의 숫자(당기순이익)로 결정된다. 결국 경영자는 합리적으로 '미래의 인재'를 팔아 '현재의 어정쩡한 자동화'를 사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둘째, '마이크로 소버린'들이 장부의 감옥에서 질식하고 있다. 이미 막대한 현금을 보유한 빅테크와 달리, AI 시대의 새로운 주역인 '마이크로 소버린(Micro-Sovereigns)'—기술 주권을 가진 소규모 혁신 기업들—은 외부 자금 조달이 절실하다. 하지만 금융 시스템은 이들에게 20세기의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담보는 무엇인가?"
현행 재무제표상 그들이 가진 최고의 자산인 '기술력'과 '맨파워'는 '0원'으로 기록되고, 남는 것은 인건비 지출로 인한 '자본잠식' 뿐이다. 영업권이라는 형태로 그 가치를 가늠할 척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제 더이상 한 기업가의 안목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새로운 창조적 파괴를 만들어내기 힘든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특히, 소규모 회사의 가치를 제대로 측정해주지 않고 코스닥에는 부실기업이 넘쳐나 불신 가득인 한국 자본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본(Invisible Capital)을 평가할 도구가 없는 한국의 금융 현실 앞에서, 제2의 딥마인드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스타트업은 자금 조달의 절벽인 '데스 밸리(Death Valley)'로 추락할 수 밖에 없다.
회계 장부가 혁신의 가치를 '0원'으로 표시할 때, 시장에서는 더욱 잔혹하고 비가역적인 비극이 시작된다. 바로 '약탈적 생태계'의 작동이다.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들은 스타트업의 기술을 '제값을 주고 사야 하는 자산'으로 인식하여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인수합병(M&A)을 제안한다. 하지만 한국의 풍경은 다르다. 한국의 거대 기업(준국가적 기업)들에게 스타트업은 혁신의 파트너가 아닌 '손쉬운 먹잇감'이다.
왜인가? 장부상 자산으로 등재되어 있지 않아, 훔쳐도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방어막이 되어주거나 보상해 줄 제도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소기업이 개발한 혁신 기술이 재무제표에 명확한 금전적 가치로 적혀 있지 않고 제안자에 의해 가치가 매겨지기에, 기득권 기업은 이를 '회사의 자산'이 아닌 '납품 업체의 서비스' 정도로 치부한다. 죄책감은 사라지고 약탈은 관행이 된다.
이러한 왜곡된 관행 아래, 핵심 인력은 빼돌려지고, 기술은 복제되며, 혁신은 헐값에 넘겨진다. 우리는 이것을 후발 주자가 올라올 길을 끊어버리는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라 부른다.
그렇기에 이 책이 제안하는 '인적 자본 및 기술 가치 평가의 의무화'는 단순한 회계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약탈을 막는 '방패'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와 기술이 객관적인 수치와 금전적 가치로 증명될 때, 그것은 함부로 훔쳐 갈 수 없는 '재산권'이 된다. 기술이 공짜가 아니라 '비싼 자산'임을 회계적으로 입증하는 것, 그것만이 약탈을 멈추고 공정한 M&A와 투자의 길을 여는 유일한 해법이다.
이 책은 바로 이 '회계적 착시'와 '약탈적 관행'을 걷어내기 위한 지적 여정이자, 다가올 완전 자동화의 시대에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찰이다.
- 제1부와 제2부에서는 데이터와 이론을 통해 우리가 처한 '생산성 역설'과 '어정쩡한 자동화'의 실체를 규명한다.
- 제3부에서는 기업을 '준국가적 실체'로, 자본을 '포괄적 자본'으로 재정의하며 성장 이론의 대전환을 시도한다.
- 제4부와 제5부에서는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인적 자본 실사(Due Diligence)'와 ‘디지털화된 물적 인프라 자본‘을 포함할 수 있는 '포괄적 자본 회계'를 도입하여, 보이지 않는 자본을 보이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기술을 훔치고 사다리를 걷어차며 '수확 체감의 바다'에서 공멸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과 기술에 정당한 값을 지불하여 함께 '수확 체증의 신대륙'으로 나아갈 것인가. 이 책이 그 공정한 항해를 위한 나침반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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