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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지훈 Aug 17. 2024

2024.8.12~2024.8.16 독서목록

시대와 권력

예고된 쿠데타, 김재웅 저, 푸른역사출판
주체 사상 탄생사


한반도는 둘로 갈라섰다. 남에는 자본주의가, 북에는 공산주의가 들어섰다. 30년 전 냉전이 끝났다. 소련이 무너졌고 독일은 통일했으며 중국은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천지가 개벽하는 와중에도 북한은 요지부동이다. 김씨 가문 지휘 아래 수성전을 계속한다. 가문 하나만 사라지면 온 나라가 먹고 사는데도 사상에 목을 맨다.


주체 사상은 김일성에서 출발한다. 한국전쟁 직후 김일성은 중공업 산업 육성에 열을 올렸다. 무리하게 중공업 산업을 시작한 대가는 1954~1955년 대기근으로 돌아왔다. 북한을 원조하던 소련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소련은 북한 내부 영향력을 확대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북한은 중국(연안파), 소련(소련파), 북한(만주파) 공산주의 파벌이 경쟁하는 무대가 됐다.


1956년 2월 20차 소련 공산당 대회에서는 스탈린 격하 운동이 시작됐다. 개인 숭배가 체제 성장을 방해한다는 이유였다. 반대로 북한은 같은해 4월 3차 조선노동당 대회에서 김일성 숭배를 시작했다. 8월 전원회의에서 소련파와 연안파가 저항했지만, 김일성은 이들을 비판주의자로 몰아 숙청했다. 모스크바에서 사라진 스탈린은 평양에서 부활했다.


70년이 지났다. 북한도 한계다. 지난해 11월. 김정은은 김일성이 헌법에 넣은 '평화 통일' 내용을 삭제했다. 외세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만들어낸 권력이 이제 북한 통치 기반을 뒤흔든다. 북한은 '주체 사상'을 지키려다 '주체'를 잃었다.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만 안타깝다.




흑산, 김훈 저, 학고재출판
종교는 인민의 아편인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칼 마르크스가 프리드리히 헤겔이 쓴 <법철학 강요>를 비평하며 남긴 말이다. 보수주의 기독교계는 이 글귀를 교계가 '반공'해야 하는 이유로 삼는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칼 마르크스는 19세기 사람이다. 당시 아편은 진통제였다. 인민들은 괴로운 현실을 견디려 종교를 찾았다. 결국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속에는 '사회가 인민이 종교를 찾도록 내몰았다'는 뜻이 담긴 셈이다.


천주교계에서 조선은 각별하다. 선교사도 없는 땅에서 신도들은 자의로 교리를 받았다. 온 인민이 하늘을 믿었기에 하느님(天主)이 낮설지 않았고, 어지러운 신분제 사회에서 하늘 아래 만민이 평등하다는 교리는 쉽게 퍼졌다. 조정도 상황을 알고 있었다. 정조가 관용을 베풀어 배교자들을 살린 이유다. 그런데도 신도 다수는 죽음을 선택했다.


흑산은 정약전과 황사영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대비가 등장하니 배경은 순조 원년 신유박해다. 황사영은 소설 말미 참수당하지만, 정약전은 흑산에서 죽을 때까지 산다. 절두산 이름에 얽힌 일화로 소설을 썼다던 작가가 소설에 흑산이란 제목을 단 이유다. 그러나 정약전이 소설을 이끌진 않는다. 문풍세, 마노리, 길갈녀, 강사녀, 아리, 김개동, 박찬돌, 최 노인... 소설 절반 넘는 분량을 민초들이 풀어간다.


'민중 소설이구나.' 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드는 생각이다. 역사를 따져 본다. 남인 100여 명이 신유박해로 죽었다. 서학에 앞장서던 남인은 이 일로 조선 후기 위정 척사파가 됐다. 숙청을 지휘하던 정순왕후는 벽파와 함께 실각했다. 김훈은 시종일관 권력에 냉담하다. 역사 속 권력이 인민을 살피지 않았듯, 역사를 쳐다보지 않는다.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는데, 누가 인민이 아편을 찾게 했나. 민초는 묻는다.




매일 한 권, 일 주일 다섯 권 원칙을 세웠지만 지키지 못했다. 코로나에 걸려 꼬박 일주일을 몸져누웠다. 38도.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책을 쥐었다. 나름 '졌지만 열심히 싸웠다'는 항변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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