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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키언니 Oct 15. 2024

햇살같은 아이가 떠났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곳

기숙학원에는 늘 만남과 헤어짐이 있다

입사동기 포함 동료들도 여럿 떠났고

또 다른 동료도 퇴사를 앞두고 있다

사랑스런 소녀 한 명도 슬픈 소식을 전했다

적응을 못해서도 몸이 아파서

떠나는 게 아니라서 더 아쉬웠다


귀여운 토끼같고 고양이 같이 이뻤던 아이가 떠났다.

밝은 미소가 햇살같던 아이


모의고사 성적이 좋아서

전체 300명 중 10등안에 들어서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렸고

늘 밝게 잘 지내던 아이.

그리고 나를 예뻐하고 좋아해주던 아이 ㅠㅠ

여학생들은 남자샘들에게 관심이 많은데

이 친구는 특이하게 여자샘을 좋아했다.


스카프 플러팅에 이어서

카멜색 코트 입은 나를 보고

코 찡긋 하고 웃는 아이는

코트 플러팅도 했다. ㅎㅎㅎ


“선생님, 오늘 코트 입으셨네요!

 예뻐요~^^.”


ㅎㅎㅎ 얘 나한테 왜 이래 ㅎㅎㅎ


참고로 난 일할 때

지극히 수수하고 재미없는 복장에

화장도 매우 연하게 한다.

중년의 나이에 이런 귀여운 플러팅 장인을 만나다니 ㅋㅋㅋㅋ


“내가 이 나이에 00이한테 예쁨받네!!

고마워!” 했더니


더한 플러팅 멘트 날리는 아이

특유의 토끼눈을 반짝이며

활짝 웃는다


“선생님이 우리 학원에서 제일 예뻐요!”


하하하하!

너무 부끄러워서 빵 터져버렸다

실제로 풋풋하고 이쁜 샘들 많은데 ㅎㅎ

무슨 말을 해야 하나 ㅋㅋㅋㅋㅋ


“젊고 예쁜 선생님들 있잖아

내가 왜????

지적인 스탈 좋아하구나 ㅋㅋ“ 농담했더니


”아이~~ 전 도도한 스타일이 좋아요.”


ㅋㅋㅋㅋㅋ 너 때문에 그 날 많이 웃었다

내가 도도한가 ㅋㅋㅋㅋ

애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기분 좋았다


학생들은 선생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정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어떤 아이는 야간샘한테 직접적으로

”00샘은 어떤 분이세요? 친해요?”

하고 물어봤다고 한다.


고맙게도 그 질문을 받은 샘은

“00샘은 책을 좋아하시고

성숙한 분이야.” 라고 극찬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평소 밝고 건강했던 아이가

며칠 전부터 담임샘과 긴 상담을 하고

부모님과 긴 통화를 이어가고

오전 내내 양호실에 들어가서

깨워도 나오지 않았다


식사시간이 다 되어 다시 깨우러 들어갔더니

갑자기 하는 말.


“선생님, 저 퇴소해요.”

“왜? 나의 햇살이 떠난다고?

우리 학원에서 나 이뻐해주는 사람 00이 밖에 없었는데 ㅠㅠ.“

“개인사정 때문에요.”

”열심히 잘 지냈는데 아쉽다…”



말을 잇지 못하더니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여기서 만난 어른 중에 선생님이

제일 좋았어요.”


흘러나오는 눈물을 꾸욱 참았다.

지금도 생각하니 눈물이 차오른다.

난 잘해준 것도 없는데 ㅠㅠㅠ

좀 더 잘해줄 걸

손 한 번 잡아줄걸

한 번 안아주고 쓰다듬어줄걸

더 챙겨줄 걸 하는 아쉬움과

미안함만 남는다



”그럼 다른 학원으로 가는 거야?“

”아니요. 혼자 해요.“

”그렇구나. 00이는 열심히 하니까

혼자 해도 잘할 거야.

이번에 성적도 많이 올랐잖아.“

”오 어떻게 아세요?

00이를 이기고 싶었는데 좀 아쉬워요.“



성실하고 승부욕도 강한 아이.

일과 마치고 줄넘기 이단뛰기 잘한다며


”선생님 보세요!“

하면서 자랑하던 아이.


같이 체육대회도 하고 싶었는데 진심으로 아쉽고 안타까웠다.

거짓말이면 좋겠다.



오후에는 내 자리에 찾아와서

“선생님은 좋아하는 동물 있으세요?” 묻길래

비키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귀여워요 ㅎㅎ 착하게 생겼어요.

선생님 닮았어요. ”

“어 ㅎㅎ 그런 말 많이 들어.”


“선생님, 전화번호 알려주시면 안 돼요?

나가서 연락하고 싶어요.“

”나가면 다들 공부하거나 친구들 만나느라

잊어버리던데… “

”그래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아이.

나는 조용히 먼지 쌓인 명함통에서

명함을 꺼내주었다.

마지막 말은 기억나지 않는데

인사를 제대로 못하고 퇴근했다.


어딜 가든 그 아이는 잘할 거다

착하고 열정적인 아이

먼저 마음을 내주고 살갑게 표현하는 아이

나중에 들어보니 학원에서도

그 아이를 잡으려고 여러 방도를 고민해서

수강료 일부를 장학금 주는 것도 제안했는데

어렵다고 했다고 한다


학원을 나가면 공부에 집중하느라 바쁘겠지만

가끔 소소한 추억으로 나를 떠올려주면 좋겠다

이제 수능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 아이는 이제 기억 속에서 나를 지웠겠지.

혹여라도 명함에 있는 내 번호로 연락을 준다며

기꺼이 맛있는 밥을 사주고 싶다.

그 아이가 좋아했던 카멜색 코트를 입고,

스카프를 매고 나갈 것이다.




© craft_ear,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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