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의 힘
부모님과 베트남에 살다가 한국에 있는 대학에 갈 거라고 기숙학원에 들어온 아이가 있었다. 더운 나라에 살다와서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이목구비가 이국적이고 그 나라 사람들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 띤 얼굴로 다녔다.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
긍정적이고 표정도 좋고 마인드도 좋고 인사도 잘하는 멋진 학생.
한국에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힘들 것 같은데 생각보다 잘 지냈다.
잠시 안부를 묻다가 이야기를 들으니 처음 기숙학원에 입학해서
2주 동안 힘들고 나가고 싶었는데 그때 내가 한 번 잡아줘서 마음 잡았다는 거다.
“선생님이 잡아주셨잖아요.”
난 그 애한테 상담한 적도 없고 딱히 마음을 잡아준 적도 없는 것 같아 놀라면서 물었다.
“내가 언제? 기억 안 나는데..”
첫 정기휴가를 나가기 전에
“'선생님이 꼭 컴백해야 돼!' 라고 말씀해주셨잖아요.”
그 친구는 입소하고 얼마 후
정기외출을 부모님이 계신 나라로 갔다
맘만 먹으면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먼 곳
나는 그저 순수하게
그 아이가 살던 나라가 내가 몇 년 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고
타지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신경 쓰여서 정기외출 잘 다녀오고
돌아오라고 했던 것 뿐인데
그 아이는 당시 홀로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거였다
어쩌면 국제학교에 다녀서
'컴백 come back' 이라는 단어가 더 깊이 와닿았을지도 모른다
이 친구는 수능 시험을 치고 온 날도 이 얘기를 했다.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선생님이 그때 잡아주셔서 끝까지 버틸 수 있었어요."
어떤 날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말하고 행동해도 통하지 않는 반면,
어떤 날은 이렇게 별 의도없이 한 말에 스스로 아이가 마음을 잡기도 한다
그럴 땐 참 고맙다
해준 것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해줘서.
지나가는 말 한 마디, 잠시 잠깐 마주쳤을 때 하는 말 한 마디의 힘이 이렇게 크다.
그래서 더더욱 어른으로서 말을 조심하고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 같다.
옳고 그름,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때로는 상대를 위해
빈말이라도 좋게 이야기해주고 힘을 북돋아주는 것이 좋다.
정신 못 차려서 독설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지만 그런 아이들은 소수이다.
수험생들은 대부분 많이 애쓰고 노력한다. 몹시 힘들어하지만 대다수 티를 안 낼 뿐이다.
참고 참고 참다가 어느 날 폭발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어떤 아이들은 일탈이 되고,
어떤 아이들은 눈물이 되고, 어떤 아이들은 분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