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비밥

휴대폰 속의 연락처를 폈다.


한참을 보다가 하나 둘 지워갔다. 1,2년 사이 연락 없는 이들을 잘라냈다. 굳이 담아두는 게 싫었다. 그 많은 이들에게 잘려나간 게 나였음을 애써 탓하고 모른 척했다. 지겨운 자기 방어. 스스로를 곧게 보지 못하고 세상을 고깝게 보는 허술한 방어. 아내는 내가 친구들을 버린 거라 말했다. 그때는 애써 부정했다. 아니, 내 연민에 갇혀 곱게 듣지 못했다. 나 빼곤 하지도 않을 날 선 감정에만 빠져있었다. 동정과 연민은 날 선 감정 앞에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이라면 더욱.


가족 외 대여섯 정도의 연락처가 남는다. 겁이 난다. 마지못해 나를 붙잡고 있는 건 가족뿐이라는 것이 든든하고도 서글프다. 그마저 어긋난 내 연민으로 잘라낼까 두렵다.




어린 시절 가난의 메마름에도 찢기지 않았던 것들이 기억의 메마름에 갈기갈기 찢긴 것 같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존감 앞에 서 있지만, 자존감이란 단어조차도 그럴싸하게 느껴질 만큼 지금 내 존재의 의미는 위태롭게 서 있다. 나는 누구인가가 아닌 나는 있어야 하는가에 가깝다. 의지박약이나 원래 그런 놈 등을 뒤져봤지만 별 도움이 안 되었고 반성을 계기 삼아 돌아보고자 했으나 잡히는 게 너무도 없다. 눈치 빠른 누구라도 괜찮냐고 물어봐주길 조심히 눈치 보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의미 없이 걷다가도 갈림길을 마주하면 의미 있는 길을 고르다가 아무 길로나 들어서는. 그저 요즘의 모습이다.


내가 가진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딱딱하게 굳어버린 듯 탄성 없는 하루의 연속이다. 토마토 말랑살이 굳어진 어른이 된 지금. 잘 지나쳐버린 것 같은 지난날을 돌아보고자 한다.


항상 그랬다. 늘 무언가 닥쳐서야 허겁지겁 돌아보고 지금을 둘러봤다. 어쩌다 들어맞은 운 좋은 혜안도 없었다. 공교롭게 백수인 지금 차근차근 되씹어보니 그간의 불운이나 좋지 않은 일들은 삶을 어벌쩡 넘겨온 내 나쁜 선행에서 비롯됨을 알게 됐다. 학업에 매진하지 않은 것도, 열심히 일에 몰두하지 않은 것도, 장사를 자꾸 말아먹게 되는 것도, 아내가 저리 힘들게 된 것도... 모두 내 습관 같은 선행 탓이다.




생각은 잡히지 않은 게 머물러 있는 것이고 글은 머물러 있지 않게 잡아 둔 것이므로 별 볼일 없어도 굳이 쓰려고 한다. 고민마저 말랑말랑했던 그 시절 반성문처럼 굳은 성찰이 녹아있지 않더라도. 악몽 후 갖게 되는 잠깐의 조심처럼 짧은 다짐이 되더라도. 스스로의 확인 도장 하나라도 남기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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