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진 척하는 사람

너 자신을, 제대로 보고 있나요

by 사유독자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운 날이 있다.
좋아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
그 사람은
말이 빠르지도, 특별히 화려하지도 않다.
오히려 차분하고,
상황에 맞는 말을 조용히 건네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처음엔
부담 없고 편안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묘한 느낌이 남는다.
쌓인 게 아니라
붙어 있는 것 같은 사람.
관계도, 말도, 태도도
어딘가에 단단히 뿌리내린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자리에
조용히 붙여진 것처럼 보인다.
필요한 순간엔 가까워지고
필요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 과정에는
미안함도, 갈등도, 설명도 없다.
그저
조용히 이동할 뿐이다.
겉으로는 충분히 단단해 보이는데
조금만 오래 바라보면
그 안의 공기가 느껴진다.
텅—
비어 있는 건 잘못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채워가는 중이니까.
하지만
비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이미 충분한 사람인 것처럼 살아가는 건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가면은 잘 만들어졌다.
표정도 자연스럽고
말투도 무난하고
타이밍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오래 속을 수 있다.
하지만 가면은 결국 가면이다.
벗겨지는 순간이 오면
남는 건
가볍게 흩어지는 관계와
아직 채워지지 않은 자기 자신뿐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사람은 늘
다른 사람을 먼저 판단한다.
누가 괜찮은지
누가 쓸모 있는지
누가 가까이 둘 만한지.
정작
자기 자신은
그 기준에서 비켜서 있는 채로.

금요일 연재
이전 16화겉모습과 본질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