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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원 Jan 08. 2024

최종_최종_최종_최수종..txt.

일상 21



서류 합격을 두 군데나 했다. 에듀테크 기업에 이력서를 넣는 건 이번이 네번째였는데, 한 곳은 경력 부족으로 떨어지고 한 곳은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세번째와 네번째. 이제 슬슬 취업이라기 보다는 그냥 일을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속이 뒤집어져 불타고 있다. 이걸 애인(라고 쓰고 내가 매일 팀장님이라고 부르는) 에게 말했더니, 누구보다도 팀장님 같은 얼굴로 능글하게 웃으며 현실적인 조언을 마구 쥐어줬다. 만약 이 회사들이 널 떨어뜨리면 다음은 3월달이라 생각하고 느긋하게 포트폴리오 완성이나 하라고. 포트폴리오는 왜 수정에 수정에 수정에, 최종_최종_최종_최종_잠깐만요최종_최종인데_최종일거거든요곧_최수종.txt 까지 가도 수정을 멈출 수 없는지 모르겠다고 엄청 찡찡거렸다. 아, 불안함의 징조. 이렇게 가다가는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은 생각도 멈출 수가 없다. 어디서든 일을 하고 싶다. 진짜 너무너무 간절하다. 


작년에 한참 면접을 보러 다닐 때 내 지원 분야는 인사였다. HRD, HRM. 왜 그 쪽으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생각해보면 아마 휴먼 리소스 매니지먼트라는 일종의 표현 안에 맨파워를 느꼈던 것 같다. 누군가를 매니징 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크게 매력을 느꼈고, 더 나아가 조금 더 정돈되고 정리 된 업무처럼 느껴졌고, 더 나아가 심리학이라는 학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신기한 기억 중 하나는, 세번째의 면접에서 만난 작은 스타트업의 대표가 내게 "소원씨는 인사랑 안 어울려요. 이건 기획일을 해야할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소원씨가 인사 담당이 아니라 기획 담당으로 들어왔으면 좋겠거든요." 라고 했던 것이다. 오래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기획자로서의 커리어 패스를 찾게 되면서 그 기억이 선명해졌다. 와, 그 사람 정말 보는 눈 좋았네. 같이 일하지 못 해서 아쉬웠네... 하고 생각하길 한참, 나는 여기서 절망하고 있을 게 아니라 어떻게든 기획자가 되어야 하겠다는 일념을 강하게 불태워 진짜로 "어떻게든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는 결심을 내렸다. (그리고 이건 5번째 결심이다.)


이 마음을 가지고 이전에 썼던 일기를 한 번 들춰보았는데, 몇달 전의 나는 생각보다 나 스스로에게 여유롭고 관대했다. 나처럼 능력 좋은 사람이 회사 하나를 못 들어가겠어? 걱정마. 이런 느낌. 누가 비웃어도 나는 그렇게 될 거라고 자신했던 내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생각하다 보니, 아차... 역시 돈 문제였다. 준비해뒀던 생활비가 모조리 떨어져 나가고 있고, 나는 빨리 독립을 해야하고, ... 하는 문제들 때문에. 그 때는 이렇게까지 시간이 더 걸릴 줄 몰랐던거지. 이해는 하는데, 돈이 없어도 사람은 살 수 있으니 내가 내게 다시 관대해졌으면 좋겠다.


최-근에 그의 집에 가는 게 조금 멋쩍어지는 일이 있었다. 아무래도 집이 그리 큰 것은 아니다보니 내가 있으면 개인 생활 공간이 없어져서 물은 것 같은데, 이번에 오면 언제쯤 가냐는 질문. 원래는 약속 상 일주일 동안 있기로 했었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니 어, 나 지금 약간 불청객이 되어가고 있는건가? 싶어졌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이 지금 너무 말랑몰랑해서 그런걸수도 있고, 내 빌어먹을 눈치가 유난히 잘 작동하는 것일수도 있고. 그래서 그냥 하루만 있다가 돌아오겠다고 했다. 본가에 있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일상을 방해하는 게 되었구나 싶어서 것도 좀 머쓱했거든.


좋아. 일기로 맘을 털어냈으니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다. 교육 콘텐츠 기획서를 짜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막상 해보니 이래저래 넣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져서 손이 바쁘다. 오늘 멘토님이랑 미팅을 잘 끝내고, 요청한 로고도 받으면 정말 바쁘게 일해야지. 파이팅.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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